술자리 2000.4.27 고민의 내 몫과 남의 몫을 구별하기가 힘들어진다. 그의 몫이라면 의당 그가 끌어안아 곰삭힐 수 있도록 격려 또는 유도해야 할 일이고, 나의 몫이라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설익은 생각을 함부로 단언하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그게 잘 분별되지 않는 곳이 술자 리이다. 그의 것과 나의 것, 지금의 것.. 미학적 인간 2006.02.17
말하지 않는 존재 2000.4.27 우린 말을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다. 말로써, 말을 통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무언'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을 '그 무엇'을 우린 두려워한다. 말을 하지 않는 동물들은 우리가 그의 눈빛에서 읽어내려고 하는 모든 의도와 신비들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 다가오기를 꺼려하는 .. 미학적 인간 2006.02.17
미래, 그 음울한 설레임 2000.4.29 미래가 아직 음울한 잿빛의 불투명으로 흐려지기 이전, 내겐 미래에 대한 설레임을 분유케했던 한 이미지가 있었다.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어줍잖은 소설들 속에서 등장한 단편적 삶의 조각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같은 거였다. 난 어서빨리, 그 삶의 한 가운데로, 그 빛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들어가 .. 미학적 인간 2006.02.17
길을 걷다가 2000.5.9 길을 걷다가, 교문 옆 잔디밭 둔턱이 파헤쳐져 있는것을 보았다. 수년 전 저 곳은 사과탄, 지랄탄 파편 흩어져 지나는 사람의 코끝을 움켜쥐는 과거가 움직거리던 곳이다. 더 수년전 저 곳은 청 자켓에 아톰 헬멧을 쓴 백골단들이 우수수 쏟아져 곤봉을 휘둘러대던 매운 과거가 부글거리던 곳이다. 길을.. 미학적 인간 2006.02.17
형이상학적 자유에서 심리적 자유로 2000.6.5 윤리와 도덕은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만이 공유하는 것이라며 찬양했던 근대 계몽사상가들에게, 윤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대변하는 덕목이었다. 자신의 동물적, 육체적 욕구를 규제하고, 사소한 이기심을 콘트롤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을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동물과 구별.. 미학적 인간 2006.02.17
근원적 불안 2000.6.9 프로이드는 인간이 지니는 근원적 불안의 원인을 '모태로부터의 분리'에서 찾는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충족되던, 그래서 아무 결핍도 따라서, 아무 욕망도 갖지않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와 달리, 자신의 결핍을 외계의 도움을 얻어 충족시켜야 하는 '바깥세계'에서 인간은 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미학적 인간 2006.02.17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계 2000.6.29 모든 것을 변명할 수 있다. 그 끔찍한 이유있음의 세계... 우리 행위의 모든 것들이 우리에 의해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을 비루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곧 우리가 그에대해 변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내가 그 이유를 댈 수 있는 한 난 무엇을 못할 수 있는가? .. 미학적 인간 2006.02.17
더위 2000.7.6 보르헤스는 '더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락한 듯한 느낌을 갖게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이 축축하고 갑갑한, 생활의 모든 의욕과 인내심을 앗아가버리는 여름 더위를 경험해보았을까. 더위는 치열한 혹은 처절한 삶의 열정보다는 심약한 패배자의 자포자기를 환기시킨다. 건강한 낙관론자와 에어.. 미학적 인간 2006.02.17
담배를 피우며 2000.7.27 척척 달라붙는 더위마냥 끈적끈적한 고민들에 휩싸여 담배를 피워물면, 연기는 대뇌 주름 하나하나에까지 스며들어가 날 노곤하게 만든다. 아이들과 떠들며 사교상 피워무는 담배와는 달리, 대뇌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연속되는 공격들에 지쳐 뻗어있기 때문일게다. 내 폐를 거쳐 여과되어 나온 연기.. 미학적 인간 2006.02.17
출국준비 2000.8.8 떠나려고 정말, 떠나려고 준비하다보니 그동안 내 주변에 켜켜이 쌓여져버린 많은 것들이 턱턱 내 발길을 가로막는다. 처분해야 할 물건과 책들, 처분 혹은 정돈해야 할 관계들, 잠시 아니 어쩌면 긴 시간동안의 유예로도 결코 해결되지 않을 '넘겨두었던 시간들'... 난 새로운 출발을 맞이할수있을까? .. 미학적 인간 2006.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