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형이상학적 자유에서 심리적 자유로 2000.6.5

김남시 2006. 2. 17. 05:34
윤리와 도덕은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만이 공유하는 것이라며 찬양했던 근대 계몽사상가들에게, 윤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대변하는 덕목이었다. 자신의 동물적, 육체적 욕구를 규제하고, 사소한 이기심을 콘트롤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을 '본능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동물과 구별시켜주는 중요한 징표였을 것이며, 윤리와 도덕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간다'는 실용주의적 모토이전에 '인간존재의 자존심이자 본질적 우월'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오늘날, 윤리/도덕 - 그와 연관된 인간의 자유 - 의 문제는 심대한 도전을 받는다.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이 자유롭다는 느낌으로부터 소위 '인간존재의 존엄성 혹은 가치' 따위를 떠올리지 않는다. 내가 윤리적, 도덕적 주체라는 자각으로부터 자유가 지니는 형이상학적 자부심도 도출되지 않는다. 자유는 그저, 날 구속하는 제약들이 (잠시나마) 사라졌을때 느껴지는 순간적, 일시적 기분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심리적 자유에의 느낌은,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거나, 내가 산 복권이 당첨되었다거나, 초고속 인터넷으로 영화나 라디오를 즐길 때, 우릴 잠시 들뜨게 하긴 하나 그로부터 인간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신체 일부 혹은 전체를 손상시킴으로써 얻는 자유의 느낌 - 피어싱, 마약, 성 도착, 자살 등 - 은 유일한 '이성적 존재'인 인간을 발견했을때 계몽사상가들이 느꼈을 자부심과는 하등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를통해 오히려 전체로서의 인간 존재의 가치와 존엄은 훼손될 테니까 말이다.

현대인들에게 자유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 억압적 전체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탈현대적 사고 속에서 '자유'는 '저 먼 시대의 거대서사'에 기대지 않는 '현실적 자유'들로 축소되었다.

자유는 좋은 것이다. 왜? 그것은 우리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니까. 그렇기에 자유는 가치있는것이라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은 즐거움을 위해 , 자유를 위해 처절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전 근대의 역사는, '작은 심리적 즐거움'으로 변해버린 자유의 날씬한 몸매에 어떤 평가를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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