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축구의 존재론

김남시 2006. 7. 1. 21:07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축구장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의 존재는 주심에게 달려있다. 주심에 의해 보여진 것이 비로소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성을 인정받는데 반해, 그가 보지못한 혹은 보지 않은 것들은, 그것이 아무리 수천명의 관중들에 의해 보여졌다 하더라도, 실재했던 것으로, 그리하여 이후의 축구장 내에서 벌어지는 경기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주심이 보지 못한 반칙, 주심이 인정하지 않은 오프 사이드는 경기 내에선 존재하지도,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도 못한다. 그런 점에서 경기 중인 축구장 내에서의 주심의 시선은, 모든 것들을 비로소 존재케 하는, 스피노자의 신과 같은 지위를 갖는다. 경기장 내에서 « 모든 것들은 (주심) 속에 있으며, 어떤 것도 (주심) 없이는 존재하지도 파악되지도 못한다 . Quiquid est, in Deo est, & nihil sine Deo esse, neque concipi potest. »[1]

 

스피노자의 신이 « 사물들을 존재하기 시작하게 하는 원인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것들이 존재 속에서 지속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 [2] 것처럼 경기 중의 주심은, 속에서 모든 것들을 자신의 판정을 통해 비로소 존재케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를통해 존재하게 것들을 시간 속에서 지속하게 한다. 자신이 인지함으로써만 비로소 존재하게 반칙을 옐로우 카드를 통해 심판하면서 주심은, 그를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를 이후 한번의 옐로우 카드를 받으면 해당 선수를 퇴장시킬 있는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주심은 또한 causa efficiens rerum existentiae [3] ,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존재의 원인 »이기도 하다.

 

축구 경기 내에서 모든 것들의 존재와 나아가 존재의 지속을 보장하는 주심의 시선은 그러나, 독점적이지 못하며, 때로는 우리의 시선과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는 소위 오심을 둘러싼 문제를 통해 드러난다. 우리 눈으로는 분명히 바라본 반칙과 오프 사이드가 주심의 시선을 통해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이후 경기에 어떤 지속적 작용도 하지 못하는 비존재로 추락함에 따라 생겨나게된 이러한 시선의 차이는, 우리에게 신적인 시선의 무오류성과 절대성에 대한 믿음을 실수나 음모, 뒷거래, 등의 인간적 속성으로 대치시키게 한다. 이러한 과정은, 신적인 절대성이 그에 어긋나는 세상의 수많은 현상들에 대한 경험적 발견을 통해  붕괴하기 시작하는 18세기 이후의 세속화 과정과 비교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절대적 시선이 다양한 시선으로 다각화됨으로써 일어났던 과정을 우리는, 이제 다수의 카메라를 통해 주심의 시선이 미치는 경기장 곳곳들을 보여주는 오늘날의 축구 중계를 통해 축약적으로 경험하는데, 이를통해 주심의 시선은 독점적 시선으로써의 자신의 절대적 권위를 잃어버리고, 다만 계약적이고 형식적인 세속화된 규칙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주심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주심이 보지 못한 , 그리하여 경기 내에서 존재로 추락해버린 것들의 존재성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것의 실재적 존재성을 주심에 의해 결정되는 경기내의 명목적 존재성과 대립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자기 위로의 전략은, 우리가 여전히, 모든 것들의 존재가 결국 주심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명목적 존재론의 세계,  월드컵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렇게 효과적이지는 못하다.


[1] Spinoza : Ehtica, Propositio XV.  .

[2] Spinoza : Ehtica, Corollarium, Proposition XXIV.

[3] Spinoza : Ehtica, Corollarium, Proposition XXV.

'물건과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험과 자본주의적 안심  (0) 2006.12.26
헤드폰과 유아론  (0) 2006.07.18
서커스와 잃어버린 낙원  (0) 2005.08.31
데카르트와 흡연 경고문  (0) 2005.08.03
섬머타임과 공모이론  (0) 200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