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데카르트와 흡연 경고문

김남시 2005. 8. 3. 07:28





베를린에 놀러온 사촌동생이 가져다 준 한국 담배갑에는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는 점잖은 경고문이 써있다. 담배갑마다 적혀있는 저 경고문이 흡연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담배회사의 친절한 배려의 소산이 아니라는 걸 고려하더라도 어쩔수 없지 않느냐는 듯조그맣게 붙어있는 경고문은 그 강도나 구체성면에서 무척이나 소극적이다. 유럽 연합의 결정에 따라 작년부터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담배갑에는 담배갑 절반 크기의 두터운 글씨로 흡연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흡연은 정자생산 기능을 손상시켜 임신률을 감소시킴니다“, „흡연은 혈관들을 막히게 해 심장발작과 졸도를 일으킵니다“, „흡연은 당신과 당신 주변의 사람들에게 심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등의 무시무시하고 자극적인 문구들이 담배갑마다 다양하게 쓰여져있다. 한국 담배갑의 그것이 가족 시간대에 방영되는 일일연속극 같다면, 유럽의 그것은 하드코어 포르노라고나 할까. 이것도 모자라 유럽연합은 글자 대신 흡연으로 손상된 폐나 간, 후두부의 컬러사진을 담배갑에 부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처럼 그 강도나 자극성의 수준에서 다양하긴 하지만 흡연의 육체적, 사회적 해악들을 지시하는 경고문을 통해 흡연률을 억제하겠다는 발상엔 인간에 대한 특정한 철학적 입장이 전제되어 있다. , 인간은 이성적 판단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규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과연 인간의 의지는 이성적 판단을 통해 제어될 수 있을까.

1637 <방법서설>에서의 데카르트는 그에대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성이 의지에 우선한다는 소크라테스적 전통에서 데카르트는 우리의 의지voltonté는 본성적으로 우리의 이성 entendement lui 어떤 식으로든 가능한 것으로 제시하는 것들만을 욕구할 있다. notre voltonté ne se portant naturellement à désirer que les choses que notre entendement lui représente en quelque façon comme possibles“[1] 말한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얻을 없는 외부세상의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으로 괴로와 하지말고 자신이 최선을 다해 도달한 것에 만족하라는 그의 임시적인 도덕 une morale par provision 세번째 격률을 가능케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세상의 무엇인가가 자신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는 확실히 인식한다면 그에대해 이상 욕구하지 않을 있는 이성적 존재다. ‚저것은 내가 얻을 없는 이라는 확실한 이성적 인식이 있다면 우리의 의지는 그를 더이상 욕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이성은 이처럼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을 단념하고 세계의 질서가 아니라 나의 욕구를 바꾸게 à changer mes désires que l’ordre du monde“[2] 하는 체념적 방식으로만 의지에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인간의 의지, 욕구능력은 대상에 대한 이성적 판단에 온전히 종속되어 있다. 의지는 이성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만을 욕구하며, 이성이 싫다고 판단하는 것은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의 이성이 좋거나 나쁜 것으로 제시하는 한에 있어서만 그를 따르거나 회피할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판단하는 만으로도 충분하며, 최선으로 행동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모든 덕과 나아가 인간이 얻을 있는 모든 다른 가치들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최선으로 판단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d’autant que, notre volonté ne se portant à suivre ni à fuir aucune chose, que selon notre entendement la lui représente bonne ou mauvais, il suffit de bien juger, pour bien faire, et de juger le mieux qu’on puisse, pour faire aussi tout son mieux, c’est-à-dire pour acquérir toutes les vertus, et ensemble tous les autres biens, qu’on puisse acquérir“[3].

바로 지점에서 데카르트는 담배갑에 경고문을 부착함으로써 흡연을 줄일 있다고 믿는 이성주의자들의 철학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만일 우리의 이성이 흡연의 해악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의지는 그를 피하려 것이다. 마치 맛없을 것이라 판단한 음식을 사먹지 않고 흥미롭지 않으리라 판단한 책을 구입하지 않듯 말이다. 그 누가 자신에게 나쁘고 위해하다고 판단되는 걸 욕구하며, 좋고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걸 일부러 거부하겠는가.

그러나, 사실 데카르트의 주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그는 우리의 의지가 본성적으로 이성이 가능하다고 제시하는 것 만을 욕구할 수 있으며 ne se portant naturellement à désirer[4], „이성이 좋거나 나쁘다고 제시하는 만을 따르거나 피할 있다 ne se portant à suivre ni à fuir“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만일 우리의 이성이 명석하고 판명한 관념을 통해 세상의 모든 선함과 옳음, 악함과 나쁨을 올바르게 구분하고 판단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의지는 그에 의해 나쁘고, 악하며 옳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 것들을 아예 욕구하지도 못한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데카르트에겐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최선으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최선으로 판단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게 되는 것이다. [5]

거꾸로 이는 누군가의 올바르지 못하고, 비도덕적인 행동은 그가 세계와 사물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된다. 저 위대한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의 세계엔 살인자도, 유괴범도, 테러리스트도, 독재자도 천성적으로 악한사람들이 아니라, 다만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말하자면 이성적 판단능력이 결여된인간들일 뿐이다. 그리고 그건 개선될 수 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주의와 노력을 통해 개선될 수 있으며[6], 나아가 모든 인간에게는 동등하게 본성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하며, 진리와 허위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기[7] 때문이다. 부적절하고 비도덕적 행위를 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사회로부터 추방시키는 대신, 이후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교화시키고 교육시키는 사회적 장치들이 등장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철학적 배경에서다.  

우리의 담배갑 경고문으로 다시 돌아가자. 흡연이 자신의 육체에 해로울 뿐 아니라,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큰 피해를 끼치는지를 알려주는 저 경고문은 흡연의 해악에 대한 이성적 판단을 촉발함으로써 담배를 피고싶은 욕구가 생겨나지 않게하는 목표를 갖는다. 사람들이 저토록 해악한 담배를 피고 있는 것은 그들이 담배의 유해함에 대해 명석하고 판명하게 clairement et distinctement 판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제 저 경고문은 그 판단을 도와 흡연에의 의지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저 경고문이 사실상 흡연자의 의지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경고문들을 들여다보면서도 담배를 펴대는 흡연자들을 보면서 확인한다. 어째서일까? 혹시 저 경고문이 의지를 변화시킬 만큼 명석하고 판명한 판단을 전달해주지 못해서는 아닐까.  Principia Philosophiae에서 데카르트가 정의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무엇인가가 바라보고 있는 눈에 현전하면서 눈을 충분히 강하고 분명하게 자극하여 우리가 그를 확실히 보고 있다라고 말할 때처럼, 어떤 인식이 주목하고 있는 정신에 현전하면서 명백할 때 이를 명석하다고 부르며, 한 인식이 그 명석함을 전제로 그 속에 자신의 특징들외엔 다른 어떤 것도 지니지 않을 만큼 다른 것들과는 분명하게 분리되고 구분될 때 이를 판명하다고 부른다. Klar nenne ich die Erkenntnis, welche dem aufmerkenden Geiste gegenwärtig und offenkundig ist, wie man das klar sehen nennt, was dem schauenden Auge gegenwärtig ist und dasselbe hinreichend kräftig und offenkundig erregt. Deutlich nenne ich aber die Erkenntnis, welche, bei Voraussetzung der Klarheit, von allem Übrigen so getrennt und unterschieden ist, dass sie gar keine anderen als klare Merkmale in sich enthält.“[8]

말하자면 머리 속에 어떤 대상이 마치 우리가 그를 눈으로 관찰하듯 분명하고도 확실한 그림으로 떠오르면서도 동시에 그를 그와 유사한 다른 대상들로부터 명백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린 그러한 인식을 명석하고도 판명한 인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건강을 해치는 담배,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라는 경고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인식은 흡연은 혈관들을 막히게 하여 심장발작과 졸도를 일으킵니다.“라는 유럽 담배갑의 그것에 비해 무척이나 불명료하고 혼연스럽다. 저 문장은 우리에게 담배의 위해함에 대한 어떤 확실하고 분명한 그림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시커먼 배기가스를 뿜어대는 자동차 뒷면에 붙어있는 환경보호 슬로건같다.        

 



[1] René Descartes : Discours de la Méthode, Troisiéme Partie AT 24, 25.

[2] René Descartes : Discours de la Méthode, Troisiéme Partie AT 24, 25.

[3] René Descartes : Discours de la Méthode, Troisiéme Partie, 4.

[4]  René Descartes : Discours de la Méthode, Troisiéme Partie, 4.

[5] 이러한 점에서 이성적 판단의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데카르트의 철학적 기획은 단지 인식론적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윤리적이기도 하다. 명석하고 판명한 관념을 통해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동시에 데카르트에겐 윤리적 정언명법이었다는 것이다. 그에겐 모든 사람이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범죄나 비 윤리적 행위들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6] René Descartes : Discours de la Méthode, Troisiéme Partie, 2.

[7] René Descartes : Discours de la Méthode, Premiere Partie. 1.

[8] René Descartes : Principia Philosophiae, I,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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