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섬머타임과 공모이론

김남시 2004. 11. 1. 08:43
오늘밤을 기해 유럽의 섬머타임이 해제된다. 말하자면, 내일부터의 시간은 오늘까지의 시간보다 한 시간씩이 더 빨라지는 거다. 어제까지의 아침 9시는 내일부터는 아침 8시가 되고, 어제 저녁의 7시는 내일 저녁 시간으로는 6시에 해당될 것이다.  

유럽에 산지 벌써 몇년째가 접어들지만, 섬머타임이 시작되고 해제될 때 마다 벌어지는 이 거대한,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제도화된 격변(?)에선,  „X-파일“이나 „환상특급“ 등에서나 느낄 수 있던 묘한 음모 이론적 긴장감을 느낀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에 살고 있는 수천만명의 사람들은 오늘밤을 기해 모두 자신의 손목 시계와 그들 집에 있는 시계 바늘을 1시간 뒤로 돌려 놓을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 기차, 비행기 등의 모든 교통 수단들은 오늘밤을 기해 어제와는 1시간 만큼 달라진 시간의 일정 속에서 진행될 것이며, 모든 학교, 직장, 관청, 슈퍼마켓, 나아가 교회들은 그렇게 인위적으로 돌려놓은 시계 바늘에 맞추어 일과를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모든 제도와 조직, 모든 사회 기구들이 어제까지 살아오고 움직여왔던 저 시간의 리듬을 일률적으로 1시간 만큼 앞당길 수 있다는 사실, 나아가 그렇게 변화된 1시간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여전히 계속 진행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엔 이전 시대엔 존재할 수 없었던 저 근대 사회의 전체성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참여하고 있는 이 엄청난 규모의 ‚사회적 공모’는 무엇보다도 국적과 나라, 지역과 거리를 불문하고 이 사회의 모든 삶이 하나의 표준화된 ‚시간’에 의해 조직되고 움직여져 나가야 하는 삶의 형태의 출현에 의해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 모든 농부들이 각자의 삶의 리듬과 하루 하루의 상대적 경과에 따라 생활했던 전 근대사회에선 오늘날처럼 이 모든 사람들의 행동과 생활을 규제하는 일률적이고 표준화된 ‚시간’은 필요하지도 또 요구되지도 않았다. 유럽 사회에서 모든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하던 교회 첨탑에 ‚시계’가 등장하게 된 것은 작업 시간에 따라 노임을 받는 초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등장으로 인해서이다.  (David S. Landes, Revolution in Time, Harvard Uni Press, 1983) 사람들은 각자의 생활리듬에 따른 상대적 시간이 아닌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의 ‚절대적 시간’과 그를 모두에게 보여주는 ‚시계’를 필요로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시간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을 그에 맞추어야 하는 표준화된 절대적 척도가 되었다. 그 시간은 어느 한 두 명의 바램이나 의지에 따라 천천히 혹은 빠르게 움직이게 할 수 없으며, 누군가에 의해 임의적으로  바꾸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 거대한 시계 바늘에 매달려 끌려가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은 이러한 시간의 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섬머타임은 저 절대적인 시간이, 그리하여 우리에겐 마치 ‚자연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지는 저 시간이 사실상 우리 사회가 매겨놓은 인위적 척도에 다름 아님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린 우리의 필요에 따라1시간을 늦게 혹은 빠르게 맞추고 그에따라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물화된 사회는 우리에겐 우릴 강제하는 또 하나의 ‚자연’에 다름 아니다. 섬머타임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이 사회가 매겨놓은 시간의 척도를 쫓아가기 위해서, 사회 성원 전체가 벌이는 거대한 줄넘기의 줄이 자신 앞에 떨어지는 순간에 그들 모두와 함께 점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거대한 사회적 공모, 유럽의 모든 사람들과 사회전체가 참여하는 이 거대한 묵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루 밤 사이에 이 세계의 시간이 1시간 만큼 앞당겨 졌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오지않는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닫겨있는 학교, 직장, 관청과 슈퍼 앞에서 허둥거려야 할 것이다. 그는 마치, 어제까지만 해도 통용되던 언어규칙이 하루밤 사이에 변해버려 더 이상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환상특급>의 주인공처럼 이 변해버린 시간의 규칙 속에서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는 절망적 낭패를 맛봐야 할 것이다.  그리곤, 마치 새로 변해버린 말을 배우는 사람처럼, 결국 하루 밤 사이에 바뀌어버린 이 세계의 시간에 다시 자신을 맞추어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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