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롤러 코스트, 번지점프, 그리고 자본주의

김남시 2004. 7. 31. 06:02
아이를 데리고 Deutsche-amerikanisches Fest에 갔다가, 한국에서는 후름라이드라고 부르는 물위로 떠 다니는 뗏목같은 롤러 코스트를 탔다. 둥둥둥둥 서서히 타고있는 안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아래로 쏴아악 물을 튀기며 곤두박질 치는 부분에서 오래간만에 짜릿함을 맛보았다. 기세좋게 ‚아빠 나 저거 타고싶어’라며 올라탔던 가은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철골로 라인을 건설하는 기술과 차량을 이동시키는 동력, 나아가 소위 놀이 동산이라고 하는, 대규모의 사람들이 여흥을 즐길수 있는 유흥단지의 등장 – 이를 위해선 새로운 개념의 여가와 자유 시간, 그를 대규모로 활용하는 자본주의적 여가산업의 등장이 전제되어야 했을 것이다. – 의 전제조건들을 생각해보면 롤러 코스트는 아무리 빨라도 20세기 이전에 등장했을리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롤러 코스트의 매력을 특징지우는, 높은 곳에서 갑자기 곤두박칠 치면서 인간 육체의 균형감각을 극한에까지 자극시키는 ‚과격한’기계가 제공하는 자극은 그것이 처음 등장하기까지, 그리고 처음 등장했을때, 많은 사람들의 격앙된 반응들을 불러일으켰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저 발전된 철골 건설기술과 자본주의적 여가산업에 의해 발생하게된 저 극한적인 자극을 우리는 평소에서라면 그 어느 곳에서도 일상적으로는 체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급속한 속도로 높은 곳에서 아래로 급강하하는 체험은, 그야말로 극단적인 상황들, 자살을 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이나, 자동차나 비행기 사고 등으로 인해 추락하는 순간 등이 아니라면 우린 우리의 ‚살아있음’을 보장받으며 그를 겪을수는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롤러 코스터는 우리가 우리의 죽음을 바로 눈 앞에 두고있는 저 순간에서나 겪어볼 수 있었을, 그리고 그 후엔 죽어버렸을 저 진지하고도 소름끼치는 체험을, 발달된 기계와 자본주의의 덕분으로, 살아 있으면서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자본주의적 발전원리는 이처럼 단지 이제껏 수공업적으로 향유되던 인간의 감성적 체험들만을 기계화하고 대량화함으로써 이윤동기로 활용했을 뿐 아니라, 이전엔 아예 가능하지도 않았던 체험, 그 체험의 강도면에서나, 그 체험 자체의 희귀성의 측면에서,롤러 코스트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의 사람들에겐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체험까지도 ‚창출’해내어 상품화시켰다. (이러한 점에서 자본주의가 모든 것들의 사용가치를 단지 그로부터 모든 질적 특성들이 탈각된 교환가치로 추상화시켜버렸다는 맑스의 지적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하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잠재적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던 인간의 체험의 영역을 ‚창출’해내어 새로운 감성적 체험의 가능성들을 열어주기도 했다.)    

어쩌면 그를통해 얻어지는 체험의 내용이 유사한 ‚번지점프’가 오히려 저 롤러 코스터 보다 시기적으로 이후에나 여가 스포츠로 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이미 사실상 동남아의 부족들에겐 오래전부터 이용되고 있었던, 저 지극히 단순하고도 간단한 번지점프의 작동원리가 엄청난 자본주의적 산업발달의 역사와 커다란 시설의 중장비들을 필요로 하는 롤러 코스트에 비해선 너무 ‚전근대적’으로 보여진다는 점이 아마도 여가 스포츠로서의 번지점프의 등장을 가로막고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여가 스포츠로서의 번지점프는 자랑스럽게 발전해오고 있던 자본주의의 찬란한 업적과 성과들을 전혀 드러내 주지 못하는 ‚원시 스포츠’ 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번지점프가 한 번에 1명 이상 수용하지 못하며, 단 몇초간의 하강을 위해 몇 분간을 그것도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준비해야 하는 절차들이, 자본주의적 원리에 입각해 볼때,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그에 큰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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