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헤드폰과 유아론

김남시 2006. 7. 18. 07:06

 

 

어떤 다른 감각보다 소리는 외부 세계의 객관적 실재와 깊은 관련을 맺어왔다. 어떤 소리가 들린다는 우리 주위에 소리를 발생시키는 어떤 물체 혹은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직접 연결되어 왔으며, 이를통해 소리는 시각이 힘을 발휘할 없는 상황 어두움 혹은 다른 사정들로 인해 시각적 지각이 차단된 경우 에서 누군가를 찾거나, 자신의 위치를 알리거나, 나아가 그를통해 곳에서의 오리엔테이션을 확보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시각이 퇴화한 박쥐가 소리를 통해 외부 세계의 물체들을 지각하고, 자신의 위치와 운동 방향을 확인한다는 알려진 사실은 소리와 청각이 어떤 다른 감각보다 외부 세계의 실재성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소리는 나아가 소리에 대한 집단적 공유를 필연적으로 함축한다. 나의 외부에 실재하는 사물이나 생명체, 혹은 사건들에 의해 발생하는 소리는 혼자에게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공간에 위치한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린다. 이를통해 소리와 소리를 듣는 행위는 외부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의 가지 핵심적 전제를 충족시킨다. 소리를 발생시키는 무엇인가의 객관적 실재성과 그것의 보편적 지각 가능성. 이를통해 소리는 외부세계의 객관적 실재성과 그것의 보편적 지각 가능성을 부인하는 철학적 유아론에 대한 강력한 반증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들을 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 귀머거리 » 명백한 진리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비이성적 존재의 메타포로 자주 등장하는 («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청각적 지각이 갖는 이러한 객관성과 보편성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발생시키는 무엇인가가 실재하지 않고도 그것의 소리를 들을 있게 스피커의 출현은 소리가 충족시키고 있던 객관적 실재론의 첫번째 전제, 소리를 내는 것의 실재적 존재성에 대한 믿음을 붕괴시켰다. 가청 거리에 실재하지도 않는 사물들의 소음, 동물의 소리, 사람의 목소리등을 들을 있게 스피커를 통해, 이제 소리들은 그것과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던 물질적 실재성으로 부터 벗어나 우리가 원하면 언제나 끄거나 있는 임의적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스피커는 소리가 충족시키던 객관적 실재론의 두번째 전제, 소리의 집단적, 보편적 지각 가능성을 붕괴시키지는 않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여전히, 그를 들을 있는 곳에 위치한 모든 사람에게 들린다. 소리의 1차적 물질적 실재성을 지양시켰던 스피커는, 그러나 아직 집단적이고 보편적인 청각적 지각의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스피커 주위에 위치해 있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스피커를 통해 듣는 소리를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함께 들어야만 하는데, 이를통해 그들에게 스피커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재하는 객관적 사물과 사태들처럼 존재한다. 소리의 집단적 지각 가능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음으로 해서 스피커는 공동체적 삶의 맥락에서 자주 활용되는데, 과일 장사의 호객소리건, 공연장의 음악소리건, 아니면 정치집회의 연설소리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그를 통해 하나의 집단적 지각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헤드폰은 소리가 가지고 있던 집단적 지각 가능성을 붕괴시키고 소리를 혼자만 듣는 개인적, 유아적 체험으로 변화시켰다. 소리들의 원천이 외부 세계에 실재하는 사물들로 부터 개인들의 귀에 꽂힌 헤드폰으로 이동함으로써 소리는 그것과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던 물질적 실재성으로부터의 최종적으로 해방되었고, 이는 나아가 스피커가 가지고 있던 소리의 집단적 지각 가능성을 붕괴시켰다. 소리를, 누군가의 목소리를, 음악을, 다른 누구도 듣지 않게 하면서 혼자서만 들을 있게 헤드폰을 통해, 이제 무언가를 듣는 행위는 모든 타인들을 그로부터 배제하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활동이 되었다.

 

이러한 청각적 지각의 개인화, 사유화는, 사회의 일반적인 개인주의화와 더불어 세계에 대한 공동적, 집단적 체험의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고 이를통해 개인들을 집단적 삶의 맥락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경향을 갖는데, 이는 헤드폰을 통해 듣는 행위의 현상학적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위 세계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듣는 대신,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을 혼자서만 듣게 주는 헤드폰을 귀에 꽂는 순간, 집단적 청각적 지각을 통해 나와 타인들이 공유하던 공동의 세계는 사라지고, 타인들은 함께 참여할 없는 나만의 사적인 청각적 지각을 통해 전달되는 사적인 세계가 열린다. 우리 육체가 위치해 있는 외부 세계에 대한 지각력은 현저히 떨어지는 대신 우리는 헤드폰에서 들리는 소리에 자신을 침잠시킴으로써 외부 세계로부터 자발적 고립이 이루어진다. 헤드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는 제스쳐는 주위 사람들이 말을 걸거나 접근하는 것을 차단시키는 효과를 가지며, 종종 우리는 방해받지 않는 사적인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제스쳐를 활용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의 삶의 조건들이 사람들을 대도시의 공간에 집약시키고, 밀집시킬수록 그들이 서로 공유하던 집단적 세계는 오히려 점점 파편화되어 가는 것이 현대 대중 사회의 모순적 특징이라면, 헤드폰은 곳에 모여 있으면서도 서로 어떤 세계도 공유하지 않은 각기 자신의 세계에 침잠되어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인상학적 physiognomisch 으로 보여준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모든 이들이 전부 헤드폰을 귀에 꽂고 앉아있는 모습은 그들의 집단적 육체적 현존과 모순적으로 결합해있는 사실상의 부재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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