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그때부터 새로 알게되는 사실들, 새로 배우게되는 지식들이 이전에 형성된 나의 생각과 신념을 확증하는 증거들로만 받아들여지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나의 지식이 이전의 모든 방황과 무입장,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드디어 세상의 모든 일들을 일관된 사유 체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확고한 기반에 도달했다는 자족감이 날 안도하게 만든다. 이 순간부터, 저 모든 구체적 사실들은 내가 도달한 사유의 완결성을 증거해주는 사례들로 다가오며, 새로 알게되는 이론과 지식들은 이미 내가 알고있는 지식들의 유사한 변종이거나 재조합에 다름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거봐 내 생각이 맞았지. 저건 결국 누가 말했던 거 아니야?
그러나, 주의할 것. 저 안정과 확실성과 심화의 순간은, 또한 이제 내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을, 새로운 지식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선입견과 편견과 낡은 고집으로 자신을 가득 채운 „늙은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증거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난 내게 쌓여진 기존의 생각과 지식들만을 확인하고, 확증하고 굳혀가면서, 더 이상 새로운 사실과 지식들로 날 풍요롭게 하지 못하는, 이제는 점점 딱딱해지기만 하는 낡은 진흙 덩어리가 되어가는 거다. 그건 더이상 새 작품을 위한 재료가 되지 못한채, 깨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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