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사실 아주 별것아닌 사소한 ‚우연적 일치’에 있다. 피곤하게 의자에 앉아있다가 문득 뻗어본 발끝에 발을 올려놓을수 있는 작은 발판이
놓여있을때, 문득 느껴진 갈증에 습관적으로 열어본 냉장고안에 우연히도 지난 번 마시다 남은 음료수가 남아있을 때, 찌뿌등한 잠을깨 불을 켜려고
손을 뻗은 순간 머리맡에 놓여있는 전등 스위치 등이 날 행복하게 한다.
그것은 그 우연으로 인해 ‚삭감’ 될 수 있었던 내 수고로움의 노력을 덜어주고, 그러한 우연이 빗나갔을때 사소하게 미량으로 내 가슴 속에 흘러들어오는 ‚저 자의적, 어떤 행운적 우연도 존재하지 않는 삶의 비극성’에 대한 예감으로부터 한발짝 날 보호해준다. 저 사소한 우연들은 내게, 나의 앞으로의 삶에도 이처럼 작은 우연들이 날 위해 배치되어 있어서, 나의 삶이 그런 우연들의 보호아래 평탄히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기대감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 어느 것도 내가 스스로 움직여 마련하고, 준비하고, 가꾸고, 조직하고, 일구어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딱딱한 ‚물질적 삶’ 속에서 저 작은 우연들이 내게 주는 위안은 그런 점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젊은 시절 ‚우렁각시의 신화’에 매료되어 한동안, 아침에 피곤한 눈을 떴을 때 썰렁한 내 방에 엊저녁에 아무렇게나 던져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개여져 있고, 과음으로 아픈 속을 달래줄 따끈한 해장국이 끌여져 날 기다리고 있는 상상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아직, 모든 결과는 투여된 노동 만큼만이라는 냉혹한 세상의 에너지/질량 보존의 법칙을 깨닫지 못했을 때다.
그것은 그 우연으로 인해 ‚삭감’ 될 수 있었던 내 수고로움의 노력을 덜어주고, 그러한 우연이 빗나갔을때 사소하게 미량으로 내 가슴 속에 흘러들어오는 ‚저 자의적, 어떤 행운적 우연도 존재하지 않는 삶의 비극성’에 대한 예감으로부터 한발짝 날 보호해준다. 저 사소한 우연들은 내게, 나의 앞으로의 삶에도 이처럼 작은 우연들이 날 위해 배치되어 있어서, 나의 삶이 그런 우연들의 보호아래 평탄히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기대감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 어느 것도 내가 스스로 움직여 마련하고, 준비하고, 가꾸고, 조직하고, 일구어놓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딱딱한 ‚물질적 삶’ 속에서 저 작은 우연들이 내게 주는 위안은 그런 점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젊은 시절 ‚우렁각시의 신화’에 매료되어 한동안, 아침에 피곤한 눈을 떴을 때 썰렁한 내 방에 엊저녁에 아무렇게나 던져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개여져 있고, 과음으로 아픈 속을 달래줄 따끈한 해장국이 끌여져 날 기다리고 있는 상상에 빠져든 적이 있었다. 아직, 모든 결과는 투여된 노동 만큼만이라는 냉혹한 세상의 에너지/질량 보존의 법칙을 깨닫지 못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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