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다시 나지 않는 이빨 2002. 09.4

김남시 2006. 2. 17. 05:19

치과에 갔다.


계속 말썽을 부리던 오른쪽 윗 어금니를 검진받았다. 독일 의사도 마찬가지로 이 이빨에 별 기대를 걸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없다고 손을 내렸다. 이빨 뿌리가 남아있지 않고 잇몸도 거의 다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난 기억한다. 이 이빨에 처음으로 금속을 입힐때 의사가 했던 말을.. 내가 국민학교때 였으니까 생각해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15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때 내 이빨을 검진했던 의사는 벌써 이 이빨의 살아날 가능성에 대해 포기했었다. 뽑기는 아까우니까 쓸때까지 한번 써보죠. 그리곤 의사는 그 이빨위에 금속을 씌웠다.

난 벌써 버려야 할 것을 계속 공짜로 쓰고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버릴수 밖에 없는 건데, 쓸때까지 쓸수있다면 좋지않겠느냐, 말하자면 난 이빨 재활용하고 있는거 아니냐는게 내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어찌보면 약 15년이상을 그대로 사용했으니 쓸만큼은 쓴것 도 같다.

내 나이 이제 서른둘, 그러나, 벌써 내 몸에서 더이상 재생될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 ‚쓸모’를 다했다는 소식은 뭔가 서늘한 착착함을 안겨준다. 이제 이 이빨은 더이상 소생할수 없다. 다시 날리도 만무하고. 그렇다면 남은 건 그냥 쓸때까지 쓰다가 버.리.는 방법밖엔 없을 것이다. 내 낡은 가방처럼...

내 육체에서 이제 하나 하나 서서히 그 수명을 다해가는 걸 본다는건 그리 유쾌한 체험은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생리를 하지않는 어머니의 몸, 돋보기를 껴야만 읽을수있게 소모되버린 아버지의 시력, 더 자라지 않는 머리칼, 말을 듣지않는 손과 다리, 기억하지 못하는 두뇌, 사라져버린 열정...

시간은 이처럼 내 육체와 정신의 소모를 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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