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담배를 피웠다.
근 4개월동안 한 모금도 맛보지 않았던 담배가 그 근 4개월동안의 휴지기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 남아 날 못견디게 지근덕거리는 경험...
추측컨대, 담배는 일단 그것을 한모금 빨면 허파와 기관지를 거치면서 그 속에 자신의 유충을 번식시키는게 분명하다. 허파 속에 남겨진 담배연기의 유충은 기관지를 거쳐 위와 내장에로 옮겨가 위나 장의 주름 사이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는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한다.
오랫동안 담배를 피지않으면, 내 뱃속에 자리잡은 담배유충은 스물스물 번식처에서 기어나와 내 배와 장을 옮겨다니며 그들만의 분비물을 분비해 대어 장과 위의 신경을 자극하여, 또다시 담배를 피지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쩔수 없이 다시 담배를 피게되면, 그 연기를 통해 또다시 내 뱃속에 증식하게된 담배유충들은 이제 더 많은 수로 장과 위장의 주름에 자리를 잡고, 더 강한 분비물을 통해 계속 자신들의 동종을 내 뱃속으로 끌어들이도록 나를 자극한다.
이들이 내 장과 위에서 번식하고 있다는 이유로 인해, 이들의 분비물의 작용으로 자극된 담배에 대한 욕구는 마치, 배고픔에 대한 욕구와 유사하게 작용해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그 욕구를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오랫동안의 휴지기 뒤에 담배를 피워 자신들의 번식을 위태롭게 한 나에 대한 보복 조치로 또다른 공격용 분비물을 강하게 배출함으로써 내 위를 쓰리게 만들고, 나아가 두통과 메스꺼움을 유발시킨다. 두통과 위통, 메스꺼움 등의 불쾌한 경험을 상기함으로써 더 이상 담배를 피지않으려는 나의 의지를 이들은 가소롭게 여기는데, 그 까닭은 이들이 또한 내 뱃속에서 날 자극하고 공격할 뿐만 아니라, 내 몸 바깥의 세계와 공조, 협조관계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이 놈들은 인간의 삶의 편안함을 위협하는 수많은 스트레스 요소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이용하는데, 그 교묘함과 집요함은 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살아가는 일에 갑자기 막막함을 느끼거나, 하는 일이 잘 되지않아 갑갑해지거나 하면, 이 놈들은 내장과 연결되어 있는 뇌의 혈관을 자극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담배를 피우면 이 스트레스가 녹아버릴것이다라는 환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은 또한 담배 피우는 행위 자체가 가지고있는 현상학적 상황을 통해 증폭되는데, 입으로 빨아들인 담배연기가 몸속을 거쳐 밖으로 빠져나와 사라져 버리는 모습은 마치 그를통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스트레스가 몸밖으로 빠져나가 용해되어 버리는 듯한 인상을 갖게하기 때문이다.
입으로 무엇인가를 빤다고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적 행위를 적용함으로써 담배는, 젖을 빨던 시절의 유아적 행복감을 상기시켜 우리로 하여금 담배를 빠는 행위를 통해 저 걱정없던 충족된 순간에로 되돌아갈 수 있을것 같은 무의식적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담배와 그 유충들의 저 악랄한 강제징집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담배를 통해 우리 뱃속에 들어가 자리잡고있는 저 유충들을 제거, 최소한 그들의 활동을 봉쇄하는 길 밖에는 없다. 그러기 위해선 놈들이 뱃속에서 분비물을 분배함으로써 담배를 피우도록 자극할때 그 분비물을 희석시켜 그 자극을 완화시키도록 물이나 음료수를 마셔주거나, 초코렛이나 사탕등의 단음식을 통해 그 분비물이 유출되는 분비선을 일시적이나마 끈적한 당분으로 막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위와 장을 음식물등으로 꽉채워 놈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길인데, 이를 위해선 매우 혹독한 포식이 요구됨으로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비만과 그로인한 피로, 무기력, 비활동성의 부작용은 어쩔수 없이 치루어야 하는 댓가다. 그러나, 이 모든 힘든 방법을 통해 이들의 활동을 일시적이나마 봉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들과 스트레스와의 공조를 막아내지 못하면 말짱 헛일이 되기 쉽상인데, 이를 위해선 어떤 왕도도 없다. 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거나, 모든 일에 너무 조급해하지 않거나 하는 등의 삶의 태도의 변화없이는 좀처럼 이 놈들의 공조를 막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근 4개월동안 한 모금도 맛보지 않았던 담배가 그 근 4개월동안의 휴지기에도 불구하고, 내 속에 남아 날 못견디게 지근덕거리는 경험...
추측컨대, 담배는 일단 그것을 한모금 빨면 허파와 기관지를 거치면서 그 속에 자신의 유충을 번식시키는게 분명하다. 허파 속에 남겨진 담배연기의 유충은 기관지를 거쳐 위와 내장에로 옮겨가 위나 장의 주름 사이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는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한다.
오랫동안 담배를 피지않으면, 내 뱃속에 자리잡은 담배유충은 스물스물 번식처에서 기어나와 내 배와 장을 옮겨다니며 그들만의 분비물을 분비해 대어 장과 위의 신경을 자극하여, 또다시 담배를 피지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쩔수 없이 다시 담배를 피게되면, 그 연기를 통해 또다시 내 뱃속에 증식하게된 담배유충들은 이제 더 많은 수로 장과 위장의 주름에 자리를 잡고, 더 강한 분비물을 통해 계속 자신들의 동종을 내 뱃속으로 끌어들이도록 나를 자극한다.
이들이 내 장과 위에서 번식하고 있다는 이유로 인해, 이들의 분비물의 작용으로 자극된 담배에 대한 욕구는 마치, 배고픔에 대한 욕구와 유사하게 작용해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그 욕구를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오랫동안의 휴지기 뒤에 담배를 피워 자신들의 번식을 위태롭게 한 나에 대한 보복 조치로 또다른 공격용 분비물을 강하게 배출함으로써 내 위를 쓰리게 만들고, 나아가 두통과 메스꺼움을 유발시킨다. 두통과 위통, 메스꺼움 등의 불쾌한 경험을 상기함으로써 더 이상 담배를 피지않으려는 나의 의지를 이들은 가소롭게 여기는데, 그 까닭은 이들이 또한 내 뱃속에서 날 자극하고 공격할 뿐만 아니라, 내 몸 바깥의 세계와 공조, 협조관계를 갖고있기 때문이다.
이 놈들은 인간의 삶의 편안함을 위협하는 수많은 스트레스 요소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이용하는데, 그 교묘함과 집요함은 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살아가는 일에 갑자기 막막함을 느끼거나, 하는 일이 잘 되지않아 갑갑해지거나 하면, 이 놈들은 내장과 연결되어 있는 뇌의 혈관을 자극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담배를 피우면 이 스트레스가 녹아버릴것이다라는 환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은 또한 담배 피우는 행위 자체가 가지고있는 현상학적 상황을 통해 증폭되는데, 입으로 빨아들인 담배연기가 몸속을 거쳐 밖으로 빠져나와 사라져 버리는 모습은 마치 그를통해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스트레스가 몸밖으로 빠져나가 용해되어 버리는 듯한 인상을 갖게하기 때문이다.
입으로 무엇인가를 빤다고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적 행위를 적용함으로써 담배는, 젖을 빨던 시절의 유아적 행복감을 상기시켜 우리로 하여금 담배를 빠는 행위를 통해 저 걱정없던 충족된 순간에로 되돌아갈 수 있을것 같은 무의식적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담배와 그 유충들의 저 악랄한 강제징집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담배를 통해 우리 뱃속에 들어가 자리잡고있는 저 유충들을 제거, 최소한 그들의 활동을 봉쇄하는 길 밖에는 없다. 그러기 위해선 놈들이 뱃속에서 분비물을 분배함으로써 담배를 피우도록 자극할때 그 분비물을 희석시켜 그 자극을 완화시키도록 물이나 음료수를 마셔주거나, 초코렛이나 사탕등의 단음식을 통해 그 분비물이 유출되는 분비선을 일시적이나마 끈적한 당분으로 막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위와 장을 음식물등으로 꽉채워 놈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길인데, 이를 위해선 매우 혹독한 포식이 요구됨으로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비만과 그로인한 피로, 무기력, 비활동성의 부작용은 어쩔수 없이 치루어야 하는 댓가다. 그러나, 이 모든 힘든 방법을 통해 이들의 활동을 일시적이나마 봉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들과 스트레스와의 공조를 막아내지 못하면 말짱 헛일이 되기 쉽상인데, 이를 위해선 어떤 왕도도 없다. 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거나, 모든 일에 너무 조급해하지 않거나 하는 등의 삶의 태도의 변화없이는 좀처럼 이 놈들의 공조를 막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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