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

수집가와 물건의 아우라

김남시 2003. 3. 27. 15:11
애초엔 우릴 매료시키는 물건들로부터 출발한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장난감, 우연히 고물상에서 접한 옛 물건, 헌책방에서 만난 한권의 멋진 고서적 등이 우리 내부의 수집가적 열망에 불을 붙인다. 그리곤 우린 매혹시켰던 그 물건들을 자신의 공간 속에 가져오려는 욕구로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다.

수집가들은 물건들을 소유하고 가지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수집하고자 하는 물건이 저기, 저 곳에, 나아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박물관에 혹은 골동품 가게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딱지와 함께 붙어있는 물건들을 멀찍이 구경하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다.

그들은 그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공간 속으로 가져와 언제든지 꺼내 만져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수집가들은 발터 벤야민이 멋지게 표현했듯, 촉각적 본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1

자신이 수집하는 물건들을 언제라도 자신이 원할 때 자신에 앞에 현전하게 만드는 참된 방법은 그것들을 우리의 공간 속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2

이 점에서 수집가들은 등산자나 산책가 혹은 박물관 방문자 들과는 다르다. 등산자나 산책자, 박물관 방문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들이 있는 공간에 자기 자신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그 물건들을 자신 앞에 현전하게 만든다.

등산가는 배낭을 메고 산에 오름으로써, 박물관 방문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이 전시되는 박물관을 방문함으로써 스스로를 만족시킨다. 그러나, 수집가들은 물건들을 자신의 공간 속으로 가져다 놓아야만, 언제든지 자신이 원할 때 그것들을 자신 앞에서 현전하게 만들 수 있도록 그 물건들을 아예 소유하고 가지고 있어야만 적성이 풀리는 인간 들이다.

일단 어떤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하면 이제 수집가는 또 다른 하나의 형이상학적 욕구에 의해 이끌린다. 총체성, 완전성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다. 물건들이, 그것이 어떤 물건이든 수집가에 의해 분류되고 범주화되면 그것은 하나의 완전한 체계적 총체성을 지향한다. 분류나 범주화는 곧 그를 통해 하나의 체계를 완성하려는 형이상학적인 총체성 욕구의 출발점이다.3

자신이 수집한 물건의 체계에 무엇인가가 빠져있다는 결핍감은 수집가로 하여금 그 빠져있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채워넣으려는 욕구에 안달하게 한다. 연도별로 수집한 책들 중 빠져 있는 1949년 판과 유럽 모든 국가의 주화모음에서 비어있는 덴마크 주화의 자리는, 그를 바라보는 수집가의 가슴에 휑하니 비어있는 구멍을 만든다. 그리곤 어떻게 해서든 그를 채우고 나서야만 비로소 치유되는 완전성의 결핍이라는 병을 낳는다.

낯과 밤, 하늘과 바다, 나무와 풀, 해와 별, 물고기와 새, 온갖 들짐승들을 지은 신이 천지 창조의 여섯째 날 '자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듦으로써 창조를 완성했듯이, 수집가는 자신의 수집물에 빠져있는 공백을 채워넣음으로써만 일곱째 날의 안식을 맞이할 수 있다.

수집가에게 있어 물건들은 다만 그 물건 자체의 가치로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수집가에게 그 수집품들은 그 물건들의 과거, 물건들의 역사를 통해 말을 건다. 수집가에게 자신의 수집품들은 그것이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에서 생산되었고, 어떤 진귀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등의 그 물건 자체의 기원과 역사뿐 아니라, 그 물건과 수집가와의 관계의 역사, 곧 그 물건을 자신이 어디에서 발견하였으며, 그것을 처음 보았을때의 감격은 어느 정도였는지, 그리고 어떤 힘들고 아슬아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손에 넣게 되었는지 등의 역사를 통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는 보관해둔 자신의 수집품 하나 하나를 다시 꺼내 볼 때마다 그 물건과 자신 사이에 일어났던 과거를 회상하며, 마치 뮤즈 신에 의해 영감에 빠져들듯 그 물건과 자신 사이의 과거가 주는 아우라4에 빠져든다. 그 물건을 구하는 과정에 얽힌 우여곡절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물건이 수집가에게 갖는 아우라는 더 크고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 물건들을 통해 영감을 받은 수집가가 자신의 물건을 꺼내 바라볼때 '그는 마치 그 물건들을 통해 물건들의 저편을 바라 보고 있는 마법사와도 같다.'5

저 책의 이전 소유자, 애초의 구입가격, 경매장에서의 긴장감, 그리고 처음 그 책을 손에 잡았을 때의 환희 등이 저 책이라는 물건과 더불어 수집가의 진열장에 꽂혀져있다. 책장에서 그 책을 뽑아든 수집가에게 그 책은 자신의 과거들을, 자신의 역사성을 수집가에게 펼쳐보임으로써 수집가를 마법사와 같은 도취에 빠지게 한다. 수집가에게 자신의 수집품들이 갖는 아우라는 그 물건들이 수집가에게 펼쳐보이는 물건들의 역사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관상학자가 사람들의 얼굴 모습만을 보고 그의 과거와 그의 운명을 읽어내듯이 우리의 수집가들은 자신의 수집물을 보면서 그 물건의 과거와 그것의 숙명을 읽어낸다. 그러한 점에서 그들은 벤야민이 말하듯 '물건의 관상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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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alter Benjamin, Das Passagen-Werk,Shurkamp 1982, Erster Band, S.274

2Walter benjamin, O.g. S.273

3개별적인 것들이 주어져 있을 때 그로부터 존재하지 않는 보편자를 추출해내는 능력인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은 현상계에서는 사실상 그에 대해 알 수 없는 가상적 완전성을 이성 이념으로 상정하게 한다. 이미 보편이 알려져 있을 때 개별적인 것들을 그 보편아래 포섭시키는 '규정적 판단력'이 그러한 점에서 존재하는 사물들로 구성되는 하나의 체계를 지향하지만, 우리의 경험을 통해 사실상 인식할수 없는 그 체계의 완전성의 이념은 반성적 판단력을 통해서 요청되는 것이다.

4발터 벤야민의이 말하는 '아우라'가 이처럼 대상이 갖는 역사성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말하는 '복제가 아닌 진품이 갖는 아우라'를 통해서도 설명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진품 모나리자가 우리에게 주는 아우라는, 저 그림 속에 다빈치의 손길과 숨길이 직접 닿았었다는 역사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복제품은 그 그림의 '내용'을 전달해줄 수는 있지만, 그 진품이 갖는 물질적 역사성을 전해주지는 못하며, 그런 점에서 진품이 갖는 아우라를 갖고있지 못하다.

5Walter Benjamin,O.g.S.274/275

6walter benjamin, S.273

7Walter Benjamin,S.274

8Walter Benjamin,S.27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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