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

지식과 기억

김남시 2004. 1. 26. 14:58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그 책을 이해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 그에대해 물어오면 난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책을 통한 나의 앎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앎이란 곧 '기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점점 나를 옥죄어온다. 지식은, 내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는다면, 나의 지식이 아닌 것이다.

지식 혹은 앎에 역사성을 부여함으로써 헤겔은 우리의 앎이 우리의 기억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이전의 앎은, 비록 그것이 지금 내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나의 현재에, 내가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사유 속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내가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지식들이 내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난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과거의 지식들은 그렇다면 어디로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2차 방정식을 풀지 못하는 지금의 내게 내가 알고 이해했었던 과거의 저 지식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어쩌면 내가 그 지식을 기억하고 있는 동안만 나의 지식이었던 것은 아닌가.

우리가 세상에서 습득하게 되는 모든 지식이 다만 이전세계에서 이미 알고있었던 것들을 '상기'하는 것이라고 말한 플라톤에게 지식이란 곧 이미 알고있던 것을 상기하고 떠올려내는 작업에 다름아니었다. 만일 내가 그것을 상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지식은 내 속에 (어떤 형태로?)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다고 우린 플라톤을 통해 위로받을수도 있을 것이다.

지식이 다만 정보에 다름 아니라면, 사유란 그 정보들에 대한 새로운 조합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기억은 사유에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린 다만 우리가 필요한 정보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를 알고 그를 서로 조합해 보면된다. 우리가 습득하고 처리해야할 모든 정보들을 다 보관하기에 인간의 두뇌는 너무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과연 지식이란 무엇인가? 앎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내가 그 내용을 내 머리 속에 저장해 둘 요량이 아니라면 내가 읽은 혹은 읽고있는 책의 의미는 무엇인가? 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