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

이방인

김남시 2004. 3. 31. 03:13
 

나찌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 낯선 땅에서 그 자신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던 독일출신 사회학자 알프레드 슈츠는 „이방인 Der Fremder „이란 글에서 이방인을 '현지인들과 공통의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자'로 정의한다. 말하자면, 이방인은 자신이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지 사람들의 과거의 기억을 갖고있지 못한 자이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태어나, 살아왔던 공간을 떠나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 곧 전혀 다른 과거의 기억을 가진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방인에겐 그 현지인들이 공유하고 있을 과거의 기억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 자라온 한국 땅을 떠나 몇년 째 독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 독일인들의 삶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지못한 이방인이다. 내가 아무리 이들의 역사를 공부하고, 이들의 문화와 삶의 괘적들을 뒤늦게 추척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이 곳에서 살아오면서 함께 공유했었을 크고 작은 사건과 일들, 정치 사회적 이슈들과 변화들, 그에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토론, 그때 오갔던 말들, 그 말들이 사람들에게 남겨놓았을 인상과 감정들, 그로인해 생겨났었을 삶의 태도들과 눈에 띄이지 않게 이루어졌던 작은 변화들, 이 모든 것들을 이들과 공유할 수는 없다. 난 다만 책과 다른 매체들 속에 걸러져 남겨진 이들의 과거들을 참조할 수 있을 뿐 이들이 살아오면서 획득했을 이 모든 체험을 통한 기억들을 공유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이 날 이곳에서의 이방인으로 만든다.

난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그 해 태어난 이곳의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와 그 문화 속에서 체험했었을 과거조차도, 내 삶의 오랜 습관과 세상을 보는 방식, 나의 문화에 의해 규정된 한계 들로 인해, 공유하지 못한다. 몇년 전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미 이들의 문화 속에서 자라나오는 것과는 달리, 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획득된 나의 기억을 통해, 그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그들의 문화 속에서 이방인으로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몇년간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공간을 떠나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문제는,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그 시간 동안에 그는 또한 자신이 살았던 그곳으로부터도 낯설어진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안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 일들, 정치, 사회, 문화적 이슈와 변화들이 한국에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킬 크고 작은 변화들을 체험하지 못하는 나는, 또다시 그들의 기억으로부터도 소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한국에 돌아가 난 나는 그 사이 한국인들이 공유했었을 과거의 기억들을 결핍한 채, 한동안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월드컵과 촛불시위, 탄핵반대 집회와 총선 등으로 이어지는, 저 거대한 변화의 체험에 참여하지 못한 나는 이들이 했었을 체험의 역사를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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