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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 손가락과 글쓰기

김남시 2011. 7. 5. 00:18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엄지 손가락이 차지하는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엄지가 다른 손가락으로부터 분화되어 나옴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도구를 잡아 쥘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인류를 동물로부터 구분시켜 주는 진화의 단계에 결정적인 일보를 가능케 했으니까. 손으로 도구를 쥘 수 있게 해 준 이 엄지 손가락은 그를통해 인류를 인간으로 진화시키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우리 몸의 한 부분이다. 글쓰기가 기본적으로 도구를 필요로 하는 한 엄지 손가락은 이 글쓰기라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능력의 발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손에 나무가지를 들고 땅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건, 뾰족한 석피을 들고 점토판에 글자를 새기건, 깃털펜을 잉크에 찍어 종이 위에 글자를 쓰건 이 모든 쓰는 행위는, 그 도구를 글쓰는 손에 쥘 수 있게 해준 엄지 손가락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타이프라이터의 등장과 더불어, 이전에 일일이 손을 움직여 함께 그려넣던 철자들이 제각기 각자의 자리와 모양을 마련해 자리잡은 자판으로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 엄지 손가락은 이런 중요한 역할로부터 떨어져나왔다. 자판을 두들겨 글을 쓸 때 엄지 손가락은 글자들이 새겨진 단추를 눌러 종이나 화면에 글자가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데 조차 기여하지 않는다. 엄지 손가락은 다만 다른 손가락들이 눌러 만들어내는 글자들 사이에 빈 공백을 위해, 자판 위에서 가장 길게 만들어져 누워있는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한량한 일을 담당한다. 자판 글쓰기에서 엄지 손가락은 마치, 폐위된 늙은 왕처럼, 펜으로 글을 쓰던 왕년의 화려함은 혼자 있을때만 떠올리면서, 그것이 아니면 서로 붙어버려 읽기 힘들게 될 글자들 사이에 끼어들어 텅 빈 자리를 마련해주는 시종과 같다.

 

이런 엄지 손가락의 불운한 운명을 뒤바꾸게 해준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으니, 핸드폰과 뒤이어 등장한 스마트폰이다. 핸드폰으로 글쓰기는, 이전처럼 길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속하게 답을 주고, 해답을 구하는 그 단속적 글쓰기에서 엄지 손가락은 이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다. 다른 나머지 손가락들이 폰을 쥐고 지탱하는데 매달리는 사이에 상대적 자유를 획득한 엄지는 핸드폰의 작은 자판 위를 누비며 글자들을, 그 글자들 사이의 간격을 만들어 낸다. 컴퓨터 글쓰기 시절, 한 손 만으로 부족해 나머지 다른 손의 엄지까지 저 말단의 보잘 것없는 작업에 동원되었던 이래로, 오른손과 왼손의 엄지는 글쓰기에 있어 획기적인 협업의 능력을 키웠고, 이는 스마트폰의 카카오톡에서 그 놀랄만한 재능을 보여준다. 단 두 손가락, 양 손의 엄지만으로 사람들은 쉴새없이 부재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말을 걸고, 약속을 잡는 글자를 만들어낸다.

 

인간이 소통의 매체로 문자를 사용하는 한 엄지 손가락은 어떤 식으로든 글쓰기에 동원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