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독일, 독일어, 언어적 연대

김남시 2004. 8. 17. 04:25
독일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내게 독일어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과 나를 연결시켜 주는 ‚만국 통용어’다.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 온 아시아 권 학생들은 물론, 미국,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루투칼, 러시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유럽에서 온 아이들, 나아가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터어키, 그리이스, 마다카스카르, 이집트, 카메룬, 가나, 몽고, 마로코, 인도네시아, 필리핀, 페루 등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아이들과 모두 ‚독일어’로 통한다. 독일어가 아니었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결코 서로 한마디 나누어보지도 못했을 이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수 있게 해주는 독일어는, 그래서 최소한 내겐 세계의 그 어떤 언어보다도 더 많은 나라들을 포괄하는 만국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갖게되는 소속감은, 여기에서처럼 서로 다른 모국어를 지닌 사람들이 ‚독일어’라는 언어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때에도 마찬가지로 생겨난다. 독일어를 말할줄 아는 한국, 러시아, 가나인들은 독일에서 독일어를 말할줄 모르는 다른 외국인들, 그리하여 그들의 언어를 모르기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그런 외국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연대의식으로 묶여있다. 다른 곳에서라면 서로 반목하고 경쟁하며 눈을 흘길지도 몰랐을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 사이에서 독일에서 독일어로 소통하면서 생겨나는 ‚국제적 연대감’을 경험한다는 건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독일어를 통해 각자의 언어적 한계를 넘어 소통하는 저 외국인들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국제적 연대’엔 그러나, 정작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독일인들은 결코 포괄되지 않는다. 이는 또한 독일에서 독일어로 이야기 나누는 비 독일인 곧, 외국인들의 대화 테마의 대부분이 독일과 독일인들을 흉보고 비난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독일에 살고있는 외국인들로서 우리는 독일어로 독일과 독일인들을 흉보며 저 연대감을 더 공고히 한다.

언어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에 대해 그 언어공동체의 소속감을 강화시켜 주는 주요한 매개체라고 한다면, 그러나 위에서 말한 저 국제적 연대감은 사실 그 속에 또 수많은 국가적 분기를 포괄하고 있는 복잡한 체계가 될 것이다. 나와 함께 독일인들을 욕하고 집에 돌아간 저 터어키인들은 어쩌면 같은 말을 쓰는 다른 터어키인과 더불어 나 혹은 한국인에 대해 욕을 하며 터어키 어 공동체 사이의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와함께 독일인들의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성을 질타했던 저 인도네시아인들은 자신들끼리 있을때 한국과 한국인들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공격적 멸시에 분노하고 있을수도 있다.

그들이 그들의 모국어를 통해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 맺게되는 저 언어적 연대감은 곧, 우리가 함께 독일어를 통해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 가졌었던 언어적 연대감보다 더 강하고 지속적일 것이다. 어쩌면 꺼꾸로 보자면, 이처럼 자신의 모국어를 통해 다른 언어 공동체에 대해 갖게되는 배타적 정체성이 모두 함께 ‚독일어’로 대화하게 되면서 그보다는 약하긴 하지만 보다 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국제적 연대성으로 발전하게 되는것인지도 모른다.

어쨋든 가장 손해를 보는 건 정작 이 땅에 살며 모국어를 말하고 있는 독일인들이다. 그들은 다른 독일인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독일 내에 살고있는 모든 외국인들을 싸잡아 자신들의 부를 갉아먹으려는 파렴치한들이라고 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를통해 저 독일인들은 자신들 사이의 집단적 결속감을 강화시킬수는 있겠지만, 우리처럼 독일에 살고있는 외국인들이 누리고 있는 저 ‚국제적 연대’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독일어로 독일인들을 욕하면서 국가와 언어를 초월하는 국제적 연대감을 발양시킨다면, 독일인들은 모국어인 독일어로 외국인들을 욕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을 저 국제사회 속에서 배타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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