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역사성.

1874년 니체는 기억과 역사를 강요하던 독일 프로이센의 지적 분위기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소위 교양의 이름으로 강요되던 과거 역사에 대한 지식은 현재와 지금의 삶의 직접성을 가로막고, 어차피 과거에 이미 있었던 것이라는 냉소주의를 통해 새로운 것과 창조적인 것을 부정하게 했다. 니체에 의하면 이러한 „기억“의 문화는 사람들을 철두철미 역사적이도록 강요함으로써 마치 .잠을 자지 않도록 강요된 사람“이나, .계속해서 되새김질을 통해서만 살아야 하는 짐승“으로 만든다.( F.Nietsche, Vom Nutzen und Nachteil der Historie für das Leben, in Unzeitgemäße Betrachtungen, Inselverlag, S.99)  그러나, 그로부터 100 년이 넘게 지났건만 오늘날 독일은 이러한 문화적 분위기에서 그리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독일에선 유럽에서 벌어지는, 유럽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늘 이전의 역사와의 관련 속에서 고찰된다.  어떤 예술가의 새로운 예술작품, 정치가의 특정한 행동, 엽기적 살인사건, 기이한 사고, 새로 등장한 상품, 특정한 모드 등 이 모든 것들이 이전의 역사 속에서 그 선행자를 갖는다. 아니, 그렇게 연결된다. 지금, 이곳, 현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것이 어떤 일이건, 과거에 일어났던 일과 연결되고 그 일의 역사성 속에서 판정되고 이야기된다. 신문은 하루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 유행, 정치적 결정, 새로나온 상품, 행사, 파티 등 모든 것들을 이전에 일어났었던 사건, 유행, 정치적 결정, 상품, 행사, 파티 등과 연결시켜 그들을 하나의 역사적 연속성 속에 배열한다. 오늘 발생한 한 사건은 과거에 일어난 유사한 사건과의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비교되고, 평가되어 그것이 갖는 의의가 논의된다. 한 정치가의 특정한 행동은 이전 역사에서 일어났던 다른 정치가들의 유사한 행동들의 역사 속에 배치되어 역시 비교되고 평가된다.

독일 우파 정당의 정치권 진출 뿐 아니라, 에이즈 기금마련 행사에 참여했던 베를린 시장이 다른 여자 연예인과 키스를 했던 정치적 ‚스캔달’ 역시 이전에 일어났던 유사한 사건들의 날짜와 사진들이 곁들여 보도되고 논의된다. 이번 주부터 무대에 오르는 새로운 연극 작품은 그 작품과 작가와, 그도 아니라면 그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의 역사성 속에서 소개되고 이야기된다.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지하차도 벽면을 누군가가 밤 사이에 시커먼 타르로 칠해놓은 사건이 발생했을때, 신문은 과거에 일어났던 그와 유사한 사건들과 장소, 그 정도들을 열거하며 그 사건을 하나의 역사 속으로 배치시킨다.  말하자면 이곳에선 그 어떤 사건도, 그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