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정신분석과 유럽인들의 손상된 주체

김남시 2006. 1. 25. 07:03

정신분석의 대중화가 낳은 사회적 결과 하나는 그것이 인간 삶에, 이상 인간의 의지에도, 그렇다고 신의 섭리와 심판의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 병적 Pathologisches 영역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정신분석적 방법과 도식에 따라 분석하면서, 자신에게 닥친 사건이나 불행한 운명들을 이상 종교적 처벌이나, 삶의 판단 오류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도 어쩔 없었던,  어린 시절의 개인적 체험에서 생긴 결과로 이해한다.  

유럽사회에 팽배해있는 이러한 분위기에는 엽기적인 범죄의 가해자들도 예외없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프랑크프르트에서 재판을 받고있는 일명 로덴부르그의 하니발“ Armin Meiwe 2001, 인터넷 광고를 통해 만난 베를린의 엔지니어 Bernd Juergen 페니스를 잘라 먹고는 – „처음엔 이빨로 끊어 먹으려 했으나 너무 질겨 칼을 써야했다.“ ! - 사망한 그의 고기를 토막내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수시로 잘라 섭취해 왔다. 인터넷을 통해 채로 자신을 먹어줄 사람을 찾았던 피해자 베른트는 이러한 도살장면 비디오로 촬영하는데도 동의했었는데, 가해자 아르민은 이후 베른트의 고기를 잘라 먹을 때마다 4시간 짜리 비디오를 보며 자위 했었다고 말했다. 프랑크프르트 법정은 피해자 자신의 요청에 따라 그를 먹고, 결국 죽게 만들었던 아르민을 살인범으로 규정할 있을지를 둘러싸고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며칠전 열린 재판 진술에서 가해자 아르민은 재판장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어린시절을 전형적인 정신분석적 설명구조에 따라 이야기했다. 8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이어 하나 뿐인 마저 자신을 떠나게 되자 그는 고양이를 유일한 삼아 어머니와 함께 외롭게 살아오고 있었다. 그는 혼자 남은 어머니를 책임져야 하는 유일한 남자로써 과도한 책임감과 외로움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병적 판타지는 그가 기르던 고양이가 병들어 죽고나서 시작되었는데, 그는 영화 <플리퍼> 나오는 주인공 아이 모습을 남동생을 상상해 내고는 그가 영원히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그의 몸을 잘라 먹음으로써 그를 자신의 속에 집어넣는’, 소위 인간고기 페티시즘에로의 고착이라 일컫는 도착적 환상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실재로 부재하는 오이디프스적 경쟁 상대를 환상을 통해 만들고 나서 다시 그를 (그의 페니스를!) 잘라먹는 거세이자 동시에 Einverleibnung ! - 이러한 판타지를 통해 그의 무의식은 도착된 오이드프스 컴플렉스의 해소를 추구했던 것일까.   

범죄 가해자가 자신의 개인사를 이러한 정신분석적 도식에 따라 설명하는 사례는 이외에도 흔하게 발견되는데, 예를들면, 현재 베를린 성범죄자 감호소에 수감중인 N – 그는 자신의 이름이 신문에 실리는 원치 않았다 -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1982 베를린에 수학여행 명의 소녀를 길에서 만나 차를 태워준다고 유인해 그루네 발트로 끌고가 성폭행 살해한 인물이다. 그외 명의 신원미상의 젊은 여인도 폭행,살해해 시신을 쓰레기 통에 유기했던 그는, 자신에게 붙잡힌 여자들에게 강한 매조 키스트적 복종을 요구했으며, 그녀들의 생사를 손에 자로서의 절대적 권력을 도착적으로 즐겼다고 한다. 의사들은 그의 증상을 새디즘적 환타지 결합된 정신적 변태 seelische Abartigkeit’ 진단했다.

신문 인터뷰를 통해 역시 정신 분석적 설명 모델에 들어맞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미 14개월때 부터 눈에 띄이는 행동을 통해 주의를 받았던 그를 가정 주부인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과 놀지 못하도록 집에 가두어 놓거나, 필요한 경우 가구에 묶어 두기도 했다. 그는 이에대한 항의로 묶여있던 장농 안에 똥을 싸기도 했다는데, 이는 중장비 운전수였던 아버지가 오랜 출타후 집에 돌아오면 가죽 채찍으로 얻어맞는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오이디프스적 집착을 폭력적으로 거부하는 어머니와 새디즘적 처벌 거세위협? – 심급으로서의 아버지라는 유아기의 가족 구조로 부터 그의 도착적 범죄행위가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엽기적 범죄자들이 들려주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이들이 체포되고 나서 지금까지 수차례 경험했을 심리학자와 정신분석가들과의 면담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유럽에선 이런 종류의 엽기적 사건들엔 심리 분석자들의 감정이 필수적으로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면담을 통해 저들은 자신들의 어린시절의 기억을 정신분석적 행위 설명구조에 맞게 재구성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이는 정신분석적 행위 설명의 구조가 유럽 사회에 얼마나 깊이  - 법정과 재판 절차에 까지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미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은 인간행위를 인간의 의식적 의지로부터 설명하던 이전의 사고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오이디프스 컴플렉스를 겪는 아이는 자신의 의지를 통해 규제하거나 교정할 없는 무의식적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며, 이는 그로부터 생겨난 그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비난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꼬마 한스의 돌출적 행동과 말은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하는 심리 발달과정 상의 사고 의해 발생한 증상들이며, 이는 아이를 혼내거나, 나무람으로써 없어질 있는 것이 아니라치료되어야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의 이러한 경향은 어쩌면 근대 이후 유럽의 개인주의가 기초해 있었던 근대적인 의지의 인간“이 쇠퇴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적 인간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주체는, 남다른 의지와 윤리 의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만 구원을 확인받는 고독하지만 강한 의지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대중화된 정신분석에 의지하는 오늘날의 유럽인들은 자신이 세상의 삶을 이끌어가는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의 질서로 인해 상처받은 병자, 그리하여, 치유되어야할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손상된 주체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처입은 주체로서의 자의식이 그를 치유해 것이라고 기대되는 소위 동양적, 정신적, 신비주의적인 것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키취적 집착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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