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외국인 관청에서의 하루

김남시 2006. 7. 27. 00:17

외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 (이 문장에 두번 쓰인 단어 외국은 서로 지정학적으로 대립되는 의미를 갖는다)의 존재는 결코 그 자체로 자명하지 않다. 그들이 그 곳에서 외국인인 한, 그들은 정기적으로 그 곳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필요한 경우 요청’, 혹은 구걸해야 한다. 내 여권에 찍혀있는, 이들이 허가해준 내 체류 기한이 지나기 전에 나는, 내가 구걸해 얻어낸 다른 증빙 서류와 문서들을 가지고 다시 한번 이곳에서의 나의 존재를 연장받아야만 한다. 외국에서 외국인으로서의 나의 존재는 이렇게 끊임없는 요청과 구걸과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증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이 곳에서의 나의 존재 근거를, 존재해야할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난 이 곳을 떠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 이 곳에서 불법적 존재가 된다. 세계 내 존재In der Welt-Sein 로서의 나/인간의 현존재는 구체적인 한 나라 내 존재 In einem Land-Sein 로서의 외국인으로서의 현존재를 통해 규정되어 있다. 우리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세계 die Welt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행정적인 특정한 나라와 국가 Land에 살 수 밖에 없는 한, 우리의 현존재는 늘 저 합법과 불법의 존재 모드 사이를 왕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난 이 곳, 독일이라는 외국에서 나의 합법적 존재를 정기적으로 증명하고 연장해야만 하는 외국인이다.

 

베를린 외국인 관청은 언제나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합법적으로 연장하려는 수많은 외국인들로 가득차 있다. 관청 문이 열리기 훨씬 전 새벽부터 이들은 닫혀진 문 앞에 줄을 서 기다리는데, 그건 7시 관청 문이 열리고 나서야 나누어주는 대기 번호표를 받기 위해서다. 이 번호표를 받고 나서도 이들은 지정된 대기실에서 최소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함에도, 이들은 이 모든 기다림의 시간을 큰 불평없이 받아들인다. 그건 나를 포함한 이들이,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이 권력과 힘에 자신의 존재를 의존하고 있는 자명하지 못한 존재,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이 몇시간의 기다림이 최소 6개월에서 2년까지의 자신의 합법적 존재를 보장해 준다면, 혹은 몇 년간 보지 못한 그리운 고국의 가족들을 이곳에 데려올 수 있게 해 준다면, 왜 기꺼이 밤새워 기다리지 못할 것인가.

    

대기 번호표를 받고 난 내가 기다려야 하는 장소는 이미 정해져 있다.: 16번 대기실. 외국인 관청은 베를린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의 서류를 관리하기 위해 그들의 성을 알파벳 순서에 따라 분류해 놓았는데, 그를통해 알파벳으로 표기한 자신의 성이 « karag »에서 « kot »사이에 해당되는 외국인들은  16번 대기실로 배정되었다.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도 자기 이름을 알파벳 철자로 개명하도록 강요하는 오늘날 서구화된 문명사회의 풍습에 따라, 이곳의 외국인들 역시 자기 이름의 원발음을 왜곡시키는 낯선 알파벳으로 표기된 철자의 질서에 따라 자신에게 배당된 대기실을 찾아가야 한다. 베를린 외국인 관청의 임의적 분류에 따라 이루어졌을 저 알파벳 표기에서 « kot »이 독일어에서 «  »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사실은, 이 곳에서 비자를 구걸해야 하는 외국인들에게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들이 체류 허가를 얻지 못한다면 그들의 이름 때문에 독일인들에게 놀림을 받거나 하는 일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파벳으로 표기된 이들의 이름의 기의가 «작용»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먼저 그 이름의 기표적 질서에 따라 움직이고, 자신의 서류를 찾고, 담당 공무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동유럽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온 외국인들이, 자신의 합법적 존재를 향한 첫번째 관문의 출입증, 대기 번호표를 소중하게 손에 쥔 채, 바로 이 곳 16번 대기실에서 함께 기다린다. 서로 다른 피부와 머리색, 서로 다른 몸 냄새와 행동 방식, 서로 다른 말과 옷을 입은 사람들, 이곳이 아니었다면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이 사람들을 이 곳에서 만나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겐, 결코 우연적이지 만은 않은 어떤 비밀스런 질서가 만들어낸 마술 혹은 음모처럼 여겨졌는데, 그건 서로 간에 어떤 유사성도, 어떤 관계도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따로 살고 있던 이 사람들을 동일한 장소에 모이게 했던 것이 다름 아닌 그들 이름의 철자가 지닌 언어적 질서였기 때문이다. «무장소적인 언어적 질서가 아니었다면 어디서 이들이 서로 함께 등장할 수 있었을 것인가 ? »[1] 라는, 중국 백과사전의 동물 분류에 대한 미셀 푸코의 경탄은 이곳 베를린 외국인 관청 대기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저 다양한 사람들을 이 좁은 대기실안에 모이게 했던 저 언어적 질서는 그 속에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을까.

 

외관상 완전히 서로 무관한 존재들을, 서로 다른 삶과 사물의 질서와 범주에 속해있는 다양한 존재들을 한 곳에, 한 장소에 모이게 한 저 언어와 철자의 질서 속에서, 발터 벤야민은,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내적 연관성을, 그들을 서로 연대하게 하는 근원적 유사성을 본다.

 

 

 

  

« 보모Ammen, 약사Apotheker, 포병Artilleristen, 독수리Adler, 원숭이Affen, 아이Kinder, 웨이터Kellner, 고양이Katzen,, 핀세터Kegeljungen, 요리사Köchinnen, 잉어Karpfen, 시계공Uhrmacher,, 헝가리인Ungarn, 창기병Ulanen 들이 그들간의 연대를 받아들였다. 이들이 소집한 커다란 비밀집회엔 모든 A, B, C..들의 대표단이 참석했고, 이들의 집회는 떠들썩하게 진행되었다.“[2]

 

저 알파벳 철자들의 질서에 의해 한 곳에 모인 ABC 책의 사물들이 서로 간의 감추어져 있던 연대를 확인하며 떠들썩한 한 판의 집회를 펼치는 동안, 역시 그들 이름의 철자적 질서에 의해 베를린 외국인 관청 16번 대기실에 함께 모인 저 서로 다른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은 그들의 대기 번호가 불리워지길 기다리며 그들의 가능한 불법/합법적 존재에 대해 생각하며 초초하게 말없이 앉아있다. 이들의 비개연적 함께 있음을 가능케 했던 이들 이름 사이의 언어적 질서는 이들 사이의 어떤 연대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관청 공무원의 행정업무 편의를 위해서만 봉사하는 시녀가 되어버리고, 이젠 이름대신 번호를 부여받은 이 비자명한 « 외국인 »들은 자신의 번호가 불리기 무섭게 서둘러 해당 사무실 공무원에게로, 바로 그들에게 그들의 합법적 존재 여부가 달려있는, 달려가야 한다.



[1] Michel Foucault : Die Ordnung der Dinge, S. 19.

[2] Walter Benjamin : ABC-Bücher vor hundert Jahren, in GS IV-2, S. 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