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독일, 기호의 제국

김남시 2006. 9. 29. 06:00

 

무엇이 서로 다른 성격과 개성을 지닌 대중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국가의 구성원임으로 느끼게 해주는가?  <군중과 권력>에서 엘리아스 카네티는 그를 공동의 언어나 관습, 혹은 종교가 아니라  대중 심볼에서 찾는다.  국가 구성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형성된 특정한 대중 심볼과 밀착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신들이 나라에 속해 있다는 공동체 감정의 연속성은 바로 주기적으로 회귀하면서 등장하는 대중 심볼에 의해 만들어진다. 심볼을 통해, 아니 그를 통해서만 나라의 자기 의식이 변화하는 것이다.“[1] 9.11이후 미국 대도시들에서 휘날렸던 성조기가, 어떻게 리벌럴한 개인주의자들을 갑작스럽게 애국주의자들로 변신시켰던가를 목격했던 우리는 엘리아스 카네티가 60년대에 지적했던 대중심볼의 힘과 영향력에 대해서 동의할 있다. 

 

역사적으로도 특정한 심볼과 상징 들은 인간 공동체들을 다른 공동체들과 눈에 뜨이게 분리시키는 기호로써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로마 제국 군대들은 황제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전쟁을 치루었었고, 황제의 얼굴이 이후 십자가로 대체되면서 이는 기독교 전사들을 이교도들과 구별시켜 주는 기호로 활용되었으며, [2] 이는 나아가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이슬람 문명과 대립하는 서양 기독교 문명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적 중심이 되었다. 

 

사람들을 서로 구분해 주고, 구분에 근거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해주는 상징과 심볼이 가지던 힘은 근대 이후 사회 전반의 세속화와 종교화, 탈마법화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모든 전통적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약화되었을까?  아니면 지구적으로 이루어지는 탈마법화, 탈전통화의 과정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 시대의 상징과 심볼에로, 그것들이 담보해주고 있던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정체성에로 매진하게 했을까?  9.11 이후 성조기로 뒤덮였던 미국 사회, 성조기를 불태우던 아랍국가들, 모하메드 커리커쳐를 둘러싼 갈등,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밟고 다니는 팔레스타인 인들의 모습들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 대중 심볼과 상징이 어느때보다 커다란 힘을 갖고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한다. 

        

독일은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상징과 기호의 변증법이 구체적인 법률적 힘을 통해서 작용하고 있는 안되는 나라 중의 하나다. 그를통해 독일은 특정한 기호와 심볼에 부여된 상징적 영향력이 바로 심볼과 기호를 둘러싼  사회, 문화, 정치적 역사를 통해 형성되고, 변화되어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1930년대, 독일의 나찌가 점점 사회, 정치적 영향력을 얻어가기 이전까지 다비드 별은 다만 유대인들의 종교적 상징에 다름 아니었다. 기원전 7세기 이전부터 사용되어온 다비드 별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교적 심볼로 사용되어오다, 18세기 무렵부터 기독교의 십자가에 대해 유대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호로 받아들여졌다. 1904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유대인 체조팀 사진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비드 별은 유대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사용하던 심볼이었다. 그런데, 나찌가 종교적 심볼을 유대인들을 비유대인들로부터 구별하는 차이의 기호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나아가 차이를 우등과 열등, 건전과 퇴폐, 순종과 잡종의 거대한 가치 계열위에서 세워나가면서 심볼은 이전의 종교적 의미를 훨씬 넘어서서, 제거되어야 목숨의 인간들을 솎아주게 하는 죽음의 표지 까지 사용되게 것이다.  

 

 

 

 

 

 

유대인들의 다비드 별이 독일인들에겐 자신들의 식별시켜 주는 기호였다면, 아리안 혈통을 이어받은 독일인들을 결속시키게 했던 다른 기호는 하켄 크로이즈 독수리였다.  다양한 십자가 문양 하나에 불과했던 하켄 크로이즈와 바이마르 시대의 국가상징이었던 독수리가 나찌에 의해 전용되면서, 기호들엔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 사회, 문화적 의미들이, 나아가 그와 결부되어 있는 상징적 힘들이 생겨나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켄 크로이즈와 독수리(아들러) 이제 유대인들과 볼세비즘의 검고 붉은 마수로부터 세계를 구원한다는 약속이자, 아리안족에 의해 지배되는 거대한 게르만 제국의 미래와 이상을 의미하는 대중심볼이 것이다.

 

 

 

 

 

 

 

 

 

 

 

어떻게 단순하고도 볼품없는 심볼이 저토록 거대한 정치적 힘을 발휘할 있었을까.  많은 이들은 하켄 크로이즈가 독일인들에게 발휘했던 거대한 정치적, 상징적 힘의 근원을 심볼 자체의 형태와 모습으로부터 설명하려 했다.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빌헬름 라이히는 하켄 크로이즈의 모양에서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자체로 분명하게 사람이 서로 얽혀있는 모습 읽어낸다. „왼쪽의 하켄 크로이즈는 누운 채로 하는 성행위를 표현하고 있으며 다른 것은 채로 하는 성행위를 표현하고 있다.“[3]  라이히에게 있어서 나찌 심볼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결속하게 했었던 힘은 그것이 근원적으로 성적상징이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엘리아스 카네티에게 하켄 크로이즈는 이미 그것의 기호적 형태에서부터 위협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 기호 자체엔 개의 교수대가 숨겨져있다. 기호는 그래서 음흉한 방식으로 그를 보는 사람들을 위협하는데, 마치 그것은 잠시만 있으면 너는 여기 무엇이 매달리게 될지 놀라게 것이다 말하는 하다. 하켄 크로이즈는 또한 위협적인 방식으로 회전하는 운동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전에 처형 바퀴에 묶여 있던 사람의 부러져 나간 사지들을 연상시킨다.“[4]

 

특정한 심볼과 기호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상징적 힘을 기호의 내재적 특성을 통해 설명하려는 이론들은 그러나,  기호들이 모습을 바꾸어가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아가 기호들의 내재적 의미 자체가 사회, 역사, 문화적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신이 세계를 창조하는데 소요된 엿새를 상징하는 여섯개의 삼각형과 가운데의 개의 육각형으로 7일째의 안식을 상징한다는 다비드 별이 어찌해서 아이들의 피를 빨아먹고 세계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장악하려고 하는 냉혹한 유대인들의 Stigma 변해갔었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특정한 기호나 심볼의 상징적, 정치적 의미는, 기호나 심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였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대전후 독일은 나찌의 하켄 크로이즈와  SS 비롯한 나찌 시대 기호의 사용을 법률로 금지하고 있다. 하켄 크로이즈나 나찌 심볼을 제작 혹은 착용하는 것은 물론, 거리나  공공 장소에 그를 그려넣는 행위도 법률로 처벌 받는다. 어느 거리에서 나찌 기호가 발견되면 독일엔 그를 담당할 수사 전담반이 뜨고, 스프레이로 혹은 페인트로 거칠게 칠해진 기호들은 곧바로 지워진다. 말하자면, 다른 나라에서라면 그저 아이들의 낙서 정도에 불과할 기호들이 독일에서는  심각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찌즘과의 연속성 속에서 찾으려 하는 네오 나찌들은 그리하여 법률로 금지된 기호들 대신 그와 비슷한 형태와 모양의, 그럼에도 이전 시대 나찌의 기호들을 상기시켜 있는 유사기호들을 만들어 내었다. 금지된 기호의 망을 빠져 나가는 이들의 방식은 매우 다양한데 그들은 이전 나찌 시대 포스터에서 금지된 기호만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혹은 금지된 하켄크로이즈의 형태를 변형시키고, 나아가 Adolf Hitler 혹은 Heil Hitler 이니셜 철자를 숫자화 (A=1, H=8) „18“ „88“ 옷에 부착해 입고 다니기도 한다. 대체와 변형, 치환 프로이드가 <꿈의 해석>에서 말한, 초자아의 금지를 피해 억압된 무의식적 욕구가 자신을 드러내는 다양한 방식들[5] 여기서도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네오나찌들의 대중 심볼이 그에 대한 금지로 인해 위와같은 변형의 과정을 거치는 반해, 그와 대립하고 있는 좌파들의 -나찌 대중심볼은 하켄 크로이즈를 휴지통에 넣거나, 주먹으로 부수거나, 금지의 사선을 그어넣는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공격, 비판, 고발의 대상을 이처럼 직접 인용하는 방법은, 예를들어 선생님, 철이가 개새끼라고 했어요라는 문장에서처럼, 사라지고 제거되어야 대상을  그에 대한 고발과 비판 행위 자체를 통해 오히려 다시 불러내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모순적이다. 지난 월드컵을 전후로 독일 법원은 하켄 크로이즈를 직접 인용하고 있는 이러한 나찌 심볼이 금지된 기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1] E. Carnetti : Masse und Macht, S.199.

[2] Hans Belting : Bild und Kult. Eine Geschichte des Bildes vor dem Zeitalter der Kunst, München 2000, S.19.

[3] Wilheml Reich : Die Massenpsychologie des Faschismus, 1981 Köln-Berlin, S.106.

[4] Carnetti : Masse und Macht, S. 213-214.

(5) Sigmund Freud : Die Traumdeutung, ff.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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