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스크랩] 프로이드와 독수리

김남시 2006. 11. 6. 07:25

 

프로이드의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분석엔 레오나르도가 어린 시절 겪었던 작은 사건이 중심에 놓여있다. 프로이드가 레오나르도의 과학적 탐구욕의 근원이 그의 억압되었던 성적호기심에 놓여으며 어머니에 대한 특별한 관계를 통해 레오나르도의 동성애적 경향이 발전해 나왔음을 분석하는데 사건이 중심 모티브라는 사실은 글의 제목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어린시절의 기억이라는 것만 보아도 있다. 프로이드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레오나르도는 독수리(Geier) 비행에 관한 과학적 분석을 진행하다 말고 갑자기 아주 어린 시절에 있었던 기억을 기록하고 있는데  부분의 이탈라아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Questo scriver si distintamente del nibio par che sia mio destino, perché nella mia prima ricordatione della mia infantia e’ mi parea che, essendo io in culla, che un nibio venisse a me e mi aprissi la bocca colla sua coda e molte volte mi percuotesse con tal coda dentro alle labbra.”

 

 

프로이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아마도 내겐 이미 오래전에 내가 이렇게 철저하게 독수리에 집착하게 어떤 계기가 있었던 같다. 내가 아직 걷지도 못하던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독수리 한마리가 내게 다가와 꼬리로 입을 열고는 꼬리로 여러번 입술을 쳐댔었다.” („Es scheint, dass es mir schon vorherbestimmt war, mich so gründlich mit dem Geier zu befassen, denn es kommt mir als eine ganzfrühe Erinnerung in den Sinn, als ich noch in der Wiege lag, ist ein Geier zu mir herabgekommen, hat mir den Mund mit seinem Schwanz geöffnet und viele Male mit diesem seinen Schwanz gegen meine Lippen gestoßen.“[1])

 

진귀하고 별난 어린 시절의 체험, 정확히 말하면 대한 레오나르도의 어린시절에 대한 별난 기억으로부터 프로이드가 어떻게 레오나르도의 어린시절의 성적 체험을, 그로부터 생겨난 그의 성적 정체성과 그의 전체를 이끌었던 무의식적 경향을 이끌어낼 것인지는 프로이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예상할 있는 바이다. 레오나르도의 환상은 당연히 성적환상이다. „레오나르도의 독수리 환상을 정신 분석가의 시선으로 살펴본다면 환상은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니다...꼬리(Schwanz), Coda 이탈리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들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남성 성기의 심볼이자 대체물이다.  레오나르도의 환상에 등장하는 상황, 독수리가 아이의 입을 열고는 꼬리로 속을 능숙하게 어루만졌다는 것은 펠리치오, 성기가 다른 사람 안으로 삽입되는 성행위의 표상과 일치한다....그리고 환상은 여성이나 성행위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수동적 동성애자의 꿈과 환상들과 유사하다.“[2]  실지로 독일어에서는 아직도 Schwanz 라는 단어는 페니스의 대체어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데,  무의식의 분석을 언어에 대한 분석으로 열어놓은 장본인 프로이드가 점을 놓칠리 없다. 어쨋든 이로부터 프로이드는 레오나르도의 환상 뒤에는 어머니의 젖을 빠는 혹은 빨리는 행위에 대한 기억 Reminiszenz“ 숨겨져 있으며 어머니 대신 독수리가 대체물로 등장하고 있는 [3]이라고 말한다.

 

이 환상에 대한 언어적 분석을 통해 독수리를 어머니와 연결시킨 프로이드는  나아가 이를 이후 그의 제자였던 C. G. Jung에 의해 더 발전되어 나갈 신화적 심층 심리학적으로 전개시키는데, 여기에서 고대 이집트 여신 Mut 이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의 신성한 그림 문자에서 어머니는 독수리 그림을 통해 표현되었다. 이집트 인들은 또한 어머니 신을 숭배했었는데, 그 신은 독수리 머리를 하고 있거나, 여러개 머리 중 최소 하나가 독수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여신의 이름은 „Mut“이라고 불렸다. Mutter (어머니) 와의 발음상의 유사성이 다만 우연적이기만 한 것일까?  독수리는 실제로 어머니와 관계맺고 있는 것이다.„[4]

 

프로이드 스스로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겼던 레오나드로에 대한 이 분석은 이후 많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보충되고 확증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에도 프로이드의 레오나르도 분석을 이야기할 때면 빠질 수 없이 등장하는 1919년 재판본에 수록된 Oskar Pfister의 레오나르도의 그림 분석이다. 프로이드가 1919년에 추가한 각주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이 분석에 따르면, 레오나르도의 유명한 그림 성안나와 함께있는 성모자상에는 그가 분석했었던 독수리 환상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 속에서 성모가 두르고 있는 치마가 만들어내는 그림 Verxierbild이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그 꼬리가 아기 예수의 입을 건드리고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저 어린시절의 기억이 그대로 그림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69년 출간된 프로이드 Studienausgabe의 편집자는 이 널리 알려진 프로이드의 레오나르도 분석이 사실상 프로이드의 결정적 오역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건 레오나르도의 노트에 등장하는 새 이름 nibio’ (nibbio) 라는 이탈리아어 단어가 사실 독수리 Geier 가 아니라 Milan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린 시절의 레오나르도에게 다가와 꼬리로 그의 입을 열고 입술을 문질러댔던 새는 독수리가 아니라 였다는 것이다.[5] 언뜻 보기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 오역이 프로이드의 레오나르도 분석에 얼마나 결정적인 가를 이해하기 위해선 독수리 Geier와 매 Milan의 서로 다른 모습을 확인해 보아야 한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독수리 Geier가 상대적으로 긴 부리와 긴 목을 가지고 있다면, 짧은 목과 더 날카로운 부리를 가지고 있는 매 Milan 의 모습은 그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프로이드가 독수리와 어머니 사이의 연관을 신화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언급했던 이집트 상형 문자의 역시 프로이드의 말처럼 독수리였다는 것도 그림의 목과 부리를 통해 확인 있다. 

 



이와 더불어 레오나르도의 그림 성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자상 등장한다는 감추어져 있는 그림 역시 아니라 독수리임이 분명하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레오나르도의 환상에 등장하는 새가 어머니 의미하며 그것이 심층 심리학적으로 이집트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프로이드의 분석이 붕괴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독수리 암컷이 수컷의 사정 없이도 수정하고 알을 낳는다는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아버지를 알지 못했던 레오나르도가 그의 어머니에 가졌던 에로틱한 관계와 연결시키고 그로부터 레오나르도의 나르시시즘적 동성애를 도출했던[6] 프로이드의 이론 역시 설득력을 잃게된다.     

 

도대체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프로이드의 실수(?)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우리는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들을 그냥 지나쳐보지 않았던 프로이드 자신의 이론을 프로이드에게 되돌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 프로이드는 카페에서 신문을 보던 중 저질렀던 자신의 오독 Verlesen에 대해 전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그는 신문에 실린 사진의 원제목 "Eine Hochzeitsfeier an der Ostsee“ (오스트 해안에서의 결혼식) „Eine Hochzeitsfeier in der Odysee“(오디세이에서의 결혼식)으로 잘못 읽었다.[7] 프로이드는 이러한 오독의 원인이 글을 읽는 사람이...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동안 다루었던 것을 그가 읽는 텍스트 속에 투사해서 읽으려는 hineinliest 태도[8] 있다고 보았다.

 

 ‚독수리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니라 오히려 레오나르도의 글을 읽고 있었던 프로이드 자신이었지 않을까.   

       

[1] Sigmund Freud : Eine Kindheitserinnerung des Leonardo Da Vinci. Fischer, S.51.

[2] Sigmund Freud : Eine Kindheitserinnerung des Leonardo Da Vinci. Fischer, S.54.

[3] Sigmund Freud : Eine Kindheitserinnerung des Leonardo Da Vinci. Fischer, S.56.

[4] Sigmund Freud : Eine Kindheitserinnerung des Leonardo Da Vinci. Fischer, S.56-57.

[5] Editorische Vorbemerkung zu Eine Kindheitserinnerung des Leonardo da Vinci. Freud-Studienausgabe, Band X, 1969, S.89-90.

[6] Sigmund Freud : Eine Kindheitserinnerung des Leonardo Da Vinci. Fischer, S.69.

[7] S. Freud : Zur Psychopathologie des Alltagslebens : ?ber Vergessen, Versprechen, Vergreifen, Aberglaube und Irrtum, 1941 in Imago Publisching London, 1969 Fischer, S. 118.

[8] S. Freud : Zur Psychopathologie des Alltagslebens : ?ber Vergessen, Versprechen, Vergreifen, Aberglaube und Irrtum, 1941 in Imago Publisching London, 1969 Fischer, S. 125.

출처 : 비평고원(Critical Plateaux)
글쓴이 : 김남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