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프로이드의 Die Frage der Laienanalyse

김남시 2006. 1. 24. 06:21

Die Frage der Laienanalyse (1926)[1] 내가 읽었던 프로이드의  가장 흥미로운 글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프로이드는 자신의 이론 체계를 그에 문외한인 일반인 대화 상대자를 향해 알기쉬운 대화체로 전달하고 있으며, 그를통해 그의 다른 글들에서는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았던 입장들이 여기선 뚜렷하게 가시화되어 등장한다. 프로이드 자신과 가상적인 상대방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 글은 다른 어느 글보다 작가로서의 프로이드의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데, 그건 명의 대화를 어떤 실제대담보다 긴장감있고 생생하게 전개시키고 있는 프로이드의 문필력에서 기인한다.

여기 등장하는 프로이드의 대화 상대자는, 플라톤 대화편의 생기없는 대화 상대자들 처럼 그저 복잡한 이론을 한마디씩 나누어 이야기하는 화자의 말에 추임새만 넣어주다 결국 입장에 통합되어 버리고 마는 Jasager 아니다. 중립적 입장의 대화 상대자“ Unparteiischer 시간이 지나갈수록 오히려 점점 자신의 뚜렷한 개성과 입장을 드러내면서, 대화상대인 프로이드를 도발하고 그가 자신의 질문을 피해가려는 기색이 보이면 즉시 교정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이들 사이의 긴장관계는 결국 날카로운 감정적 갈등 상황으로까지 발전하는데, 이는 상대의 도발적 추궁에 지친 텍스트 속의 프로이드가 당신은 중립적 상대자로서의 의무를 지키지 않고있다 항변하자, „ 정도로 나에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면, 도대체 나를 대화 상대자로 선택했는가.“라는 상대자의 당당한 답변 속에서 절정에 달한다.  

무엇보다 우릴 즐겁게 하는건, 우리가 진작 프로이드에게 따져묻고 싶었으나 감히 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겁없는 문외한이 정신분석의 창시자에게 던져대는 통쾌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정신분석자는 도대체 환자를 데리고 무얼하는 것이냐라는 첫번째 질문에서 출발한 그는, 분석적 치료가 결국 환자와의 대화에 다름아니라면 카톨릭의 고해성사나 일반상담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그게 어떤 치유효과를 갖는다는 것인가, 정신병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가 있는데 도대체 분석가는 필요한 것이냐, 별다른 의학적 지식도 필요없는 분석은 결국 아무나 있는 아니냐, 분석 치료 기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이유는 뭐냐, 분석자와 환자사이에서 은밀한 성적 대담이 오고 간다던데 그건 어떻게 일이냐, 환자의 다양한 증상의 해석’Deutung이라는게 결국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가 아닌가, 분석 치료라는게 객관적 지식과 방법보다는 결국 분석자의 개인적 영향력에 좌우되는 아니냐, 노이로제 환자가 의사에게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거냐, 당신의 이론을 위해5살짜리 꼬마 („한스!“) 데리고 실험했다던데 그래도 되는거냐 등의 그야말로 주옥같은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프로이드의 답변을 이끌어낸다.

나아가 멋진 대화 상대자는 구체적으로, 정신분석 기법은 어디서 배울 있는지 (이에대해 프로이드는 베를린과 비인의 정신 분석연합 Psychoanalytishe Vereinigung E. Jones 박사에 의해 설립된 런던의 교육기관을 소개한다.), 교육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 2!) 같은 실천적 질문을 던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훌륭한 질문자에 힙입어 프로이드는 정신분석 전문대학 psychoanalytische Hochschule 수립하려는 자신의 – „아직 환상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  야망과 자신이 생각하는 교과 과정을 소개하기도 한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전문대학에선 학생들은 심층 심리학’ Tiefenpsychologie 과목으로, 생물학 입문, 성생활 일반론, 정신병 일반론 아니라, 문화사, 신화학, 종교 심리학과 문학을 배워야 한다.

글은 또한 프로이드를 둘러싼, 궁금했던 다른 인물들의 현황과 동정도 전해준다. 프로이드는 20년전 자신의 유명한 아동 정신분석 이론의 실험 대상이었던 5살짜리 아이가 – „꼬마 한스“ (1909) ! – 건강하고 능력있는 젊은이가 되었고, 심각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갖긴 했어도 문제없이 klaglos사춘기를 통과했다 전하고,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몇몇 예전의 자기 제자들이 인간 사회를 섹슈얼리티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요구에 부응해, 명은 성적인 것을 추상적이고, 신비로운 Mystisches, 다른 명은 성생활을 권력과 지배에 대한 요구가 펼쳐지는 장으로 설명함으로써 매우 호응을 얻었다 전한다. 우리는 제자들이 1927 <오르가즘의 기능> 출판했던 빌헬름 라이히이와 융이라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있다.

 이글엔 무엇보다 전쟁과 관련된 메타포들이 많이 등장한다. 전선과 후방의 메타포를 통해 – „결정적인 것은 물론 적이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 하는 것인데, 정신적 삶에 있어서 그것은 외부세계가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 외부세계와 접하는 Ich 후방으로서의 Es 상호관계를 설명하거나, 분석적 치료를 오래 걸리게 하는 환자의 심리적 저항, 적의 치열한 저항과 맞닥뜨린 군대에 비유하는  – „적의 저항이 펼쳐지는 곳에선 평시라면 전차로 몇시간만에 통과할 있는 구역을 군대는 동안이나 지체해 있을수도 있다. „ – 대목들이 그것이다. 1 대전이 지난지 얼마 안된 시기에 쓰여진 글에서 우리는 전쟁의 체험이 위대한 메타포리커 Metaphoriker 프로이드를 통해 정신분석 이론의 서술 속으로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1926년의 프로이드는 글에서 자신의 정신분석 이론이 단지 정신의학  교과서의 장으로 삼켜져 버리는’ verschluckt werden것을 우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층 심리학은 이보다는 나은 운명을 맞이해야 하며 바라건데 그렇게 것이다. 심층 심리학, 정신적 무의식의 이론 Lehre vom seelischen Unbewussten 인간 문화와 예술, 종교 그리고 사회 질서와 같은 인간의 위대한 제도들의 발생사를 다루는 모든 학문들에 필요 불가결한 것이 있을 것이다....분석을 노이로제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만 하나의 적용일 뿐이다. 추측컨데 미래엔 이것이 제일 중요한 적용 분야가 아니라는 밝혀질 것이다...다양한 인문학 대변자들이 정신분석의 방법과 관점들을 그들의 대상에 적용하기 위해 정신분석을 배워야 한다면, 그건 정신분석 문헌들에 나와있는 결과들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에게 열려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분석을 이해하는 배워야만 하는데, 이건 그들이 스스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이루어진다.“ 

2006년의 우리는 프로이드의 모든 추측과 희망들이 마지막 한가지만 놓고는 -  거의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고있다.



[1] Sigmund Freud : Darstellungen der Psychoanlyse, Fischer Taschenbuch Verlag, 1982. S.139-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