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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죽음에 관련된 새 도규멘트>

김남시 2006. 12. 3. 08:03

 

책은 제목 그대로 발터 벤야민의 죽음과 관련되어 스페인 법원 문서보관서에 보관되어 있다 1992 처음으로 발견된 도규멘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여기엔, 벤야민이 소지하고 있던, 그가 뉴욕 소재 사회 연구소 연구원이라는 증명하는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작성한 인증서를 비롯, 당시 벤야민의 죽음을 조사했던 Portbou 검사 Fernando Pastor Nieto 사건 경위서, 죽기전 벤야민을 진찰하고 죽은 그를 검시했던 의사 Ramon Vila Moreno 진료비 청구서, 벤야민이 마지막 밤을 묵고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Hotel de Francia 주인 Juan Suner 호텔 숙식료 청구서, 나아가 관과 무덤까지의 운반을 맡았던 장의사 Carpinteria Mecanica de Enrique Espadale 벤야민의 장례와 안장을 담당했던 Portbou 천주교 사제 Andres Freix 요금 청구서 등이다.  

 

스페인 법원 아키브에 보관되어 있던 공식 문서들이  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데에는 발터 벤야민의 이름을 둘러싼 혼동에 이유가 있었다. 문서들에는 모두 발터 벤야민의 Benjamin 이름 Walter 뒤바뀐 형태인 Dr. Benjamin Walter 기록되어 있었다. 도규멘트들을 모아서 편찬한 Ingrid Scheurmann 설득력있는 설명에 따르면 전통적 카톨릭 국가 스페인에서는 Benjamin이라는 유대인 성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고,  그건 성이 아닌 이름으로만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스페인 검사와 경찰 벤야민의 죽음 사건을 담당한 관련인들은 그의 벤야민 그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쨋든 문서들이 발터 벤야민대신 벤야민 발터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이유로 이들은 오랜 동안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문서 아키브 구석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문서들을 통해 이전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벤야민의 마지막 일정이 보다 상세하게 밝혀질 있게 되었다. 이에 따르면 벤야민 일행은 1940 9 25 오후 Portbou 도착한다. 스페인 국경을 넘으려다 적발된 이들은 다음날 다시 프랑스로 보내질 것이라는 불안한 소식을 듣고 그날 밤을 Portbou에서 보내야 했다. 당시 이들이 묵게 되었던 호텔 Hotel de Fancia 이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명의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호텔 주인 Juan Suner Jonama 스페인 경찰 아니라 지역 독일 게스타포와도 친분이 있었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들은 탈출에 실패해 호텔에 감금되게 되었던 벤야민 일행의 마지막 희망마져 위협했음에 틀림없다. 호텔 주인이 이후 담당 검사에게 제출한 숙식비 청구서에 따르면 호텔 4 룸에 머물렀던 벤야민은 곳에서 25 저녁 식사를 하고, 어디론가 차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벤야민은 미국에 있는 호르크하이머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려 시도했을 것이다. 또한 도규멘트에 따르면 이날 마을 의사 Ramon Vila Moreno 네차례 호텔에 왕진해 벤야민의 혈압을 재고, 사혈을 하고  차례 주사를 놓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벤야민이 몰피움을 복용하기 전에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몰피움을 복용하고 구급 소생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관련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벤야민이 이미 50알의 몰피움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어쨋든 26 22 35,  호텔 주인은 옷을 차려입은 침대에 누워 죽어있는 발터 벤야민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벤야민의 시신이 발견된 호출된 의사 Ramon Vila Moreno 검시 그의 사망 원인을 Hermoragia cerebral,  뇌출혈로 인한 자연사 판정한다. 죽기 벤야민을 4차례나 진찰했던 의사가 그의 몸에서 몰피움 복용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의 죽음을 자연사 판정했다는 사실은, 몰피움 복용 증세에 대해 경험이 없었을 마을 의사 Ramon Vila Moren 오진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보다는 당시 스페인의 사회, 정치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인 카톨릭 국가 스페인에서 자살 즉각적으로 사법부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중대한 처벌행위 여겨졌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던 벤야민 일행들은 물론 이들의 복잡한 사정에 휘말려 들기를 원치 않았을 마을 의사  누구도 벤야민의 죽음을 이상 크게 확대시키길 원치 않았을 것이다.

 

의사의 사망 진단이 끝난후 벤야민이 지니고 있던 소지품 가죽으로 서류가방 하나, 남자 시계, 담배 파이브, 사진 여섯장, 뢴트겐 사진 한장, 안경, 편지와 잡지, 그리고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장의 종이 뭉치 담당 관청에 넘겨지고, 그가  지니고 있던  (70달러와 500 프랑) 당시 스페인 화폐 페세타로 환전되어 그의 숙식과 진료비, 그리고 장례 비용으로 지불된다.  

 

당시 벤야민의 탈출 일행 명이었던 Gurland 부인에 따르면 벤야민은 아도르노에게 전달해 달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겼다. 그녀가 탈출 도중 발각을 우려해 없애 버렸다는 유서를 그녀는 미국에 도착 아도르노의 부탁에 의해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해 낸다. 우리가 Gurland 부인의 기억을 신뢰할  있다면, 글은 발터 벤야민이 남긴 마지막 글이 되는 셈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내게는 지금 끝내는 말고는 다른 선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여기는 아무도 삶이 끝나는 알지 못하는 피레네 산맥에 처한 작은 마을입니다. 부탁컨데, 친구 아도르노에게 생각 (mes pensées) 전달하고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쓰고 싶었던 것들을 쓰기엔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지 않군요. »  (Dans une situation sans issue, je n’ai d’autre choix que d’en finir. C’est dans un petit village dans le Pyrénées où personne ne me connaît ma vie va s’achever. Je vous prie de transmettre mes pensées à mon ami Adorno et de lui expliquer la situation où je me suis vu placé. Il ne me reste pas assez de temps pour écrire toutes ces lettres que j’eusse voulu écrire.)   

 

 

 Ingrid Scheurmann : Neue Dokumente zum Tode Walter Benjamins, AsKI e. V., Bonn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