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

과거라는 이름의 혐의자

김남시 2004. 7. 14. 16:20
한국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과거에 대해 늘 혐의와 의심과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 그것이 일제 시대의 왜곡된 역사교육에 의해서건, 우리 스스로가 갖게된 자아 정체성 때문이건,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늘 무언가 께림찍하고 떳떳하지 못한 배반과 굴종과 대립과 갈등의 혐의자로 보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오늘날 한국을 지배하는 저 화려한 '진보'의 이데올로기의 배후엔 또한 우리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기억들이 잠재되어 있다. 유럽인들이, 심지어 나찌의 역사를 가진 독일인들조차도 자신들의 과거를 얼마나 사랑하고, 기억하며, 그를 현재에 불러내 매만지고, 가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우리 자신의 과거와 멀어져 있는가를 새삼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과거와 얼굴이 마주치길 회피하고, 다만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은, 나아가 그 과거의 바탕이 없이는 사실상 어떤 흉칙한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저 미래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려 있는 동안, 우리는 정말 그렇다면 우리 자신들은 누구이며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 가를 잊어버렸다. 혐의를 갖고 있는 과거 대신, 우리에게 화려한 미래를 약속하는 미래,' 김중배'를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우리자신을 천박한 속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위 '과거청산'은 과거가 안고있는 혐의를 벗겨냄으로써 우리가 다시 그를 꺼리낌없이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걸 목표로 삼고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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