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

무시간과 무장소의 장소로서의 박물관

김남시 2005. 11. 7. 07:17

박물관은 물건들의 대도시다. 거기엔 자신이 원래 속해있던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물건들이, 마치 태어나 살던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몰려든 실향민들처럼 모여있다. 자신이 있던 장소를 떠나 여기, 인위적이고 제도적인 장소 박물관에 모인 저 물건들은, 다만 명찰처럼 붙어있는 안내판을 통해서만 자신이 떠난 장소와 시간을 이야기한다. 태어나고, 속해있던 장소를 통해 특징지워져야 할 저 물건들의 정체성은 여기선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컨셉에 따른 새로운 사물의 질서 속에 재배치되어,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부여받는다. 도시에 살고있는 장소를 잃은 사람들이 그래도 사투리를 통해 육체에 남겨진 자신의 장소의 흔적을 드러낸다면, 문외한인 우리에게 저 물건들의 육체는 그들 장소의 어떤 흔적도 말해주지 않는다.

 

박물관에 모인 저 물건들의 무장소성 Ortslosigkeit은 또한 그 물건들의 무시간성을 결합되어 있다. 원래의 장소에서라면 시간 속에서 변하고, 퇴색하고, 허물어지며 사라져갈 저 물건들은 여기 박물관에선 방습기와 전문적 처리를 통해 시간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 보존되어 있다. 서로 다른 시간, 나아가 서로 다른 시대의 수많은 물건들이 지금과 여기의 한 장소에 모여있음으로써 박물관은 저 무시간성의 특성을 배가시킨다. 박물관은 수십년, 아니 수백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지니고 있는 저 많은 물건들을 단 몇시간 동안에 일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과거의 시간들을 응축된 형태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 며칠, 아니 몇십년에 걸쳐 일어난 이야기를 단 두시간 반에 응축해 보여주는 영화적 지각에 익숙해있는 우리에게 박물관은 저 장소를 잃은 다양한 시대의 물건들이 번갈아 가며 출연하는 무성영화관 같다.

 

박물관의 물건들은 자신의 아우라를 박물관이라는 장소의 권위로부터 얻는다. 원래의 장소와 시간과 결부되어 있던 저 물건들의 아우라는 이제, 이 물건이 진품임을 보증해주는 박물관의 제도적 권위에 의해 생겨난다. 복제기술의 발달이 물건들을 자신의 원래의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해방시켰고 그를통해 그와 결합되어 있던 아우라를 상실케 했다면, 이제 사람들은 그 복제품들과 구별되는 (혹은 구별되어야 할) 오리지널을 박물관이라는 장소에 갖다 놓음으로써 물건들의 잃어버린 아우라를 박물관의 아우라를 통해 상쇄하려 했다. 박물관들은 그곳에 유명한 물건들의 오리지널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와 아우라를 만들어내었고, 또 이렇게 생겨난 박물관의 권위와 아우라는 역으로 그곳에 소장되어 있는 물건들의 진품성을 강화시켜 주는 제도적 바탕이 된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들은 그들이 소장하고 있는 오리지널을 통해 자신들의 권위와 아우라를 얻었고, 또 그를통해 그곳에 전시되고 있는 물건들의 진품성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킨다. 자신의 원래의 장소를 잃어버린 물건들은 이렇게, 박물관이라는 장소의 제도적 아우라를 통해 자신의 상실했던 아우라를 보상받는다. 

 

사진과 화보, 인터넷 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구경할 수 있는 물건들을 굳이 저 유명한 박물관들에 가서 보고 싶어하는 우리들은, 우리처럼 자신의 장소와 시간을 잃어버린 물건들이 보여주는 커리어의 변신을 동경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억과 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림, 시간, 메시아주의  (0) 2006.04.16
과거, 역사, 기억에 대한 단상  (0) 2005.12.18
기억과 사진  (0) 2005.07.21
과거라는 이름의 혐의자  (0) 2004.07.14
저장과 기억  (0) 200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