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

기억과 사진

김남시 2005. 7. 21. 08:02

기억은 세계에 대한 우리 지각의 흔적이다. 살아가는 동안 어쩔수 없이 세계를 지각하고 체험해야만 한다면, 기억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육체 속에 남겨놓은 세계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때로 우리는 기억을 위해, 기억만을 위해 지각하기도 한다. 헤어져야 하는 친구를, 사별하는 부모를, 먼길을 떠나는 자식을 우리의 기억속에 남겨놓기 위해 우린 그들의 손을 잡거나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바라보거나, 그와 함께 기억에 남을만한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한다.

 

때로 기억을 위한 지각 기억에 대한 강박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다. 짧은 시간에, 얼마 안되는 돈으로 가능한 많은 곳을 돌아 다녀야 하는 배낭여행이 예다. 거기에서 우리의 지각과 체험은 다만 기억을 위해 조직화되고, 빠른 시간에 되도록 많은 곳과 많은 것들을 체험하고 그를 기억 속에 쑤셔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쫓는다. 기억을 위한 숨가쁜 여정이 피곤한 육체에 더이상 기억의 공간을 남겨두지 않을 때를 대비, 우린 대표적인 비육체적 보조 기억장치인 카메라를 활용한다. 카메라는 성급한 체험과 지각의 과잉을 수용하길 거부하는 육체를 대신해 우리의 지각과 체험을 기억하는 과제를 떠맡는다. 우린 에펠탑과 개선문 앞에서, 뽕삐두와 오페라 하우스 거리에서 유명한건물과 거리들에 대한 지각과 체험을 카메라에게 일임시킨다. 낯선 도시에 대한 우리의 체험과 지각은 그들을 찍는 렌즈 화면과 셧터를 누르는 손가락으로 대체되고, 우린 카메라가 대신 모든 체험과 지각들을 고스란히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다음 예정지로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이렇게 사물화된 지각과 체험은 그러나, 인화되어 나온 사진들 속에서 우릴 배반한다. 에펠탑과 뽕삐두 앞에서 찍은 사진들은, 피곤한 여행에서 돌아와 그들을 들여다 보는 우리에게 그가 정작 기억하고 있었어야 우리의 체험과 지각에 대해선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곳에 있었다라는 사실을 사무적으로 기록해 놓은 증빙서류들로써 사진들은, 실상 어떤 체험과 지각도 없이 그곳에 부재하고 있었던 역설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사진은 우리의 육체적 지각과 체험이 함께 동반되었을 때만 기억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그를 찍었던 시간과 장소에 대한 체험과 지각이 결핍된 사진들은 그저 사진의 고전적 기능 하나였던 기록과 도큐멘트로서의 의미[1]만을 지닌다. 세계 도처의 유명한 건물, 탑과 성당, 작품들과 도시들의 사진을 언제든지 구해 있는 오늘날, 사진을 찍는 혹은 사진에 찍히는 주체와의 주관적 관련이 없는 사진들은 어떤 기억의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 자신을 사진들 속에 끼워넣는방법을 통해서도 그리 크게 변하지 않는다. 우린 우리가 방문했었던 건물, 거리, 장소들 속에 자신의 모습을 함께 찍어 넣음으로써 시간과 장소에서의 나의 현존 증거하려 한다. 그러나, 그를통해 드러나는 것은 나의 체험하지 못하는 육체가, 육체에 의해 체험되지 못한 장소들 속에 물건처럼 놓여 있었다 메시지일 뿐이다. 기억에 대한 강박을 통해 사진 속에 함께 찍힌 나의 모습은 속에 있는 모든 시간과 장소들 내에서의 나의 강박적 현존의 흔적일 뿐이다. 나의 모습을 포함하고 있는 사진 속의 사물들은 나에 의해 체험되지 못한 관광엽서의 그림들처럼 거기 그냥 그렇게 있다. 

 

핸드폰 카메라는 사진이 주는 기록과 기억에의 강박을 더욱 강화시켰다. 일상 속에서 좀처럼 체험하기 힘든 사건이나 장면들을 순발력있게 기록할 있게 주는 핸드폰 카메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맞닦뜨린 사건과 장면들을 기억과 기록에의 강박없이 지각하고 체험하기 힘들어졌다. 사건과 엽기적 장면, 뉴스꺼리가 만한 일상의 순간들은 놓치고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찍혀, 사진을 찍은 내가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라는 자기 현존의 메시지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전 시대의 세계가 우리에게 그에 대한 지각과 체험을, 그를통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요구하던 정열적인 여인이었다면, 오늘날의 세계는 우리에게 그의 모든 순간과 장소에 우리가 다만 금욕적으로 현존하기만을 요구하는 성처녀다.       



[1] 사진이 오늘날처럼 자신의 사적인 일상사를 기록하는 기호품이  되기 사진은 공간적, 혹은 시간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들을 기록하는 도큐멘트로서의 역할을 했다. 유럽 근대 인간학Anthropologie 인류학과 나아가 사회학의 발생엔 20세기 사진을 통한 비유럽 문화들의 기록이 커다란 역할을 했었다. 사진들은 유럽 식민주의의 시선을 통해 비유럽이라는 타자 구성해내는 시각적 도큐멘트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