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서구세계와 이슬람

김남시 2001. 10. 11. 00:26
뉴욕과 펜타곤에 승객을 가득실은 비행기 4대가 떨어지고 나서, 세계는 아니, 최소한 미국을 위시한 서방세계는 일제히 소리높여 영원한 이교도 이슬람교와 아랍인들을 향해 타도의 깃발을 쳐올리기 시작했다. (이 글을 준비하는 중 미국이 드디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뚜렷한 정황증거나 물증이 밝혀지기도 전에 미국 대통령은 이를 "문명세계에 대한 (비문명, 야만세계의) 선전포고"라고 규정, 서방 쪽의 저 오래된 '반이교도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슬람권과 아랍국가의 반미감정이 세계 전역을 자신의 '치안과 보호'하에 두고자 했던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의 소산으로 비교적 근래에 형성된 것인 반면, 이슬람권에 대한 유럽 및 서방세계의 불신과 적대감은 십자군 전쟁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적 기원을 갖는다.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그리스도의 이름 하에 이슬람을 퇴치하기 위한 십자군 창설을 제창한 이래, 서구 유럽세계는 이슬람이라고 하는 강력한 이교도에 대한 불안과 적대감을 통해 경제적, 문화적, 정신적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200 여 년에 걸친 십자군 원정의 실패와 황제와 교황의 대립, 그 이후 잇달은 교회세력의 분열(종교개혁) 등으로 더 이상 저 막강한 이교도를 이 땅 위에서 몰아낼 수 없음을 깨달은 서방세계는 그러나, 그들과의 공존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만은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기독교 문명의 세계 진출을 가로막았던 이슬람세계는 이후 서구인들에게 종교적 신념을 위해 폭력과 살인도 서슴지 않는 집단이자, 늘 서구문명을 위협하는 비문명적 세력으로 자리잡는다.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구인들의 이러한 시각은 이미 오래 전에 지어진 저술들에서도 심심치않게 발견된다. 아랍 및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구인들의 불신어린 편견이, 그래도 서구인들 중에선 비서구 사회를 그 나름의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다른 서구인들에게 소개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책에서까지 발견된다는 사실은, 저 이교도세계에 대한 그들의 편견과 불신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서구인 최초로, 당시까지 서구세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동방세계' - 구체적으로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을 위시한 아랍지역, 몽고, 인도 등- 를 여행하고 {동방견문록}(1559년)을 남겼던 마르코 폴로에게서도 우린, 비 서구문명에 대한 상대적으로 개방적이었던 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불신과 적의감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의 여행기에서 이슬람교도들(사라센)들 중에는 '잔인한 사람들과 살인자들이 많아서' 여행하는 상인들에게 큰 해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마호메트가 그들에게 준 율법에 의해 그들의 율법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떠한 해악을 가하거나 혹은 어떠한 것을 빼앗더라도 죄가되지 않는다"(동방견문록 1부 30장)고 믿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사라센들은 이 같은 식으로 행동한다.'

마르코 폴로가 그의 책에서 전하고 있는 '산상노인과 암살자들'에 대한 전설은 오늘날의 상황과 관련하여 매우 흥미롭다. ALAODIN이라 불렸던 그 산상노인은 두 산 사이의 계곡에 여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정원과 집과 궁전을 짓고 '세상의 온갓 멋진 것들로 치장하고 장식'하였다. 그곳의 도랑엔 포도주와 우유, 꿀과 물이 흐르게 했으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교와 교태를 남자들에게 부리는 데에 익숙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인과 아가씨들을 그곳에 배치하였다.

자신의 정원이 예언자 마호메트가 말했던 천국이라고 믿게 하고는 그 지방에 사는 열두 살에서 스무 살 사이의 모든 청년들을 그곳에 끌여 들인 노인은 이를 통해 이 젊은이들을 자신의 정적들을 암살하는데 활용했다는 것이다. '마호메트의 천국'에서 온갖 환락과 기쁨에 젖어있는 젊은이들을 잠에 빠지게 해 다른 곳으로 옮겨놓은 후, 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살고 있었던 천국이 사라진 것에 크게 상심한 젊은이들에게 천국에로의 회귀를 약속하며 암살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이를통해 그 노인은 자신의 적인 많은 군주와 사람들을 암살하였는데, 이는 천국에 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힌 젊은이들이, '노인의 명령과 뜻을 수행하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내던지기 때문'이었다.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에게 이슬람교는 '외부와 유대를 맺는 능력의 결핍 위에 구축된 대 종교'이다. 곧, 이슬람교는 명목상의 관용의 교리와는 달리 다른 신앙과의 공존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가 만물에 대한 자비를, 그리고 기독교가 대화의 욕구를 표방하는데 대해서, 이슬람의 불관용은 불관용을 유죄시하는 그들 자신들끼리의 세계에서는 자각되지 않는 형태를 취하게된다. 왜냐하면 설령 언제나 거친 방법으로 남에게 자기들의 진리를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 사실 이 점이 더 문제다 - 남이 '남'인 채로 그대로 자기들과 함께 공존하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의혹이나 굴욕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딴 신앙 내지 딴 처세법의 증인인 그 '남'을 소멸시키는데 있다."(9부 '탁실라 유적')

레비 스트로스에게 이슬람교는 나아가 동양의 불교와 서양의 기독교의 융합을 통해 이룰 수 있었을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봉쇄해버린 방해자이다. "만일 이슬람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서양은 기독교와 불교와의 완만한 상호 침투작용으로 더욱 기독교적이 됐을" 텐데 말이다. "마호메트가 마치 동양과 서양이 한데 어울려서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추고있는 윤무에 뛰어들어 잡은 손들을 풀어 헤쳐버리는 방해자처럼 나타나, 우리 유럽인의 생각과 그것과 매우 흡사한 인도의 교리 사이에 끼여들어 온다....이슬람은 보다 문명화한 세계를 양단 하였다. 이슬람에게 현재로 여겨지는 것은 이미 지나간 시대에 속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슬람은 천년간의 오차 속에서 살고있는 셈이다. 이슬람은 한가지 혁명적인 사업을 성취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후진적인 일부의 인류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에 현실의 씨를 뿌림으로써 잠재력을 죽인 결과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불교, 그리스도교와의 비교를 통해 이슬람교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사자로부터 받는 학대, 저승에서 받을 악독한 처우, 주술에서 오는 불안감 등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세 가지 커다란 종교적 시도를 하였다. 대략 반세기의 간격을 두고 인간은 불교,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를 연이어 고안해내었다. 그런데 각 단계가 그 전의 것에 비해 진보를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후퇴를 보이고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불교에서는 내세가 없다.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삶의 근원적 비판으로 환원된다. 인간은 그 비판의 능력을 영원토록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로되, 일단 비판을 이룰 수만 있으면 성현이 사물과 인간이 의미에 대한 거부로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를 무로보며 종교로서의 그 자체도 또한 부정하는 하나의 수련이다.

이에 대해서 새삼 공포에 사로잡힌 그리스도교는 내세를 다시 설정하고 동시에 그 희망, 위협, 그리고 최후의 심판도 새로 다듬었다. 따라서 이슬람교에 남겨진 것이라고는 현세를 내세로 이어주는 길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현세는 정신세계(종교세계)와 합병돼버렸다. 사회질서는 초자연 질서의 위광으로 몸단장을 하고 정치는 신학이 되어버렸다. 결국은 미신조차도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 수 없었던 귀신이나 유령이 차지하던 자리에 이미 너무도 현실적 인물이 돼버린 지도자들을 앉힌 셈이 돼버렸다." ({슬픈열대} 9부)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를 비판'하면서, 남미의 원시부족들을 방문하여 그들의 삶과 생활방식 속에서 모든 인류의 문화적 보편구조를 발견하고자 한 이 저명한 인류학자에게서조차 발견되는 이슬람교에 대한 적의감은 이슬람교에 대한 뿌리깊은 기독교 세계의 불신과 깊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20세기초 이래로 형성된 미국에 대한 이슬람 국가들의 반감이 주로 정치적 성격을 갖는데 반해,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서구세계의 불신은 뿌리깊은 종교적 역사를 갖는다. 미국의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태도가 자신의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 하에로 복속시키려는 것에 있었다면, 아랍인들의 반미감정은 그러한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키려는 데에서 출발하였다.

서구세계가 십자군 전쟁시엔 가지지 못했던 최신식 무기와 막강한 영향력을 동원해 아랍세계를 공격할 수 있다면, 이제 황금 시대의 영광을 뒤로하고 세계자본주의의 취약지구를 형성하고 있는 아랍국가들은 이에 대해 목숨을 내거는 '자살테러'를 통해 대항할 수 있을 뿐이다. (테러는 언제나 약한 자의 무기였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마치 컴퓨터 게임하듯 단추 몇 개로 한 도시를 궤멸시킬 수 있는 물질적 기반 위에 서있다면, 아랍세계는 종교적 광신과 자기희생을 동반한 강한 정신적 맹목으로 그에 대항한다.

- "종말이 저 앞에 있고, 천국의 약속이 손에 잡힐 정도로 다가온다. 너의 가슴을 열고, 죽음을 신의 이름으로 맞아들여라. 곧바로 난 천국에서 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자폭 비행기를 몰았던 Mohammed Atta의 노트에서)


* 참고문헌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
레비 스트로스 <슬픈열대>
Spiegel 41,4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