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발터 벤야민의 부인 도라

김남시 2004. 3. 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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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부인 Dora


아스야 라키스와 발터 벤야민의 연애행각을 다룬 첫번째 글을 본 사람은 발터 벤야민의 아내 도라 벤야민을 그저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은 처량한 아내로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그녀는 유명한 남편의 배후에 숨겨져 자신을 희생시키기만 했던 그런 타입의 여인은 아니었다.
발터 벤야민과 도라가 처음 알게 된 것은 그들의 대학 시절이었다. 1912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베를린을 떠나 프라이 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벤야민은 1913년 여름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와 베를린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한다. 그는 이미 프라이부르크 시절부터 당시 1차대전을 앞둔 유럽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평화주의 운동을 벌이던 청년 그룹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고, 이후 베를린 대학에 돌아와서도 대화방 (Sprechsaal)'이라는 철학 그룹을 만들어 베를린의 젊은 지식인들 사이의 지적 교류를 도모하고 있었다. 이 그룹의 창시자이자 모임의 주도자였던 발터 벤야민이 이 그룹의 정신적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면 역시 이 그룹의 멤버였던 도라는 매력적인 미모와 총명함, 그리고 능숙한 사교력을 통해 이 모임의 사교적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비인 대학의 영문학 교수 레온 켈러의 딸이었던 도라가 베를린의 이 철학 모임에서 많은 남자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고있던 당시, 그녀는 이미 음악가 막스 폴락과 결혼한 유부녀, 도라 소피 폴락이었다.
유부녀 도라가 벤야민을 만났던 당시 발터 벤야민 역시 완전한 홀몸(?)은 아니었다. 1914년 벤야민이 베를린 자유 학생단'의 의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그 또한 학교시절 친구의 동생인 Greta Radt와 약혼한 상태였다. 191454일 베를린 자유 학생단의 공식 행사에서 학생의 삶'이라는 연설을 마친 벤야민에게 도라가 건네준 장미 꽃다발 역시 당시 뮌헨에서 공부하고 있던 그의 약혼녀가 보내 준 것이었다.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때까지도 벤야민은 그녀와의 약혼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있었다. dora benjamin
베를린 지성계의 지적 중심인 벤야민과 매력적인 유부녀 도라는 이제 점점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벤야민은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고 음악에 조예가 깊던 도라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도 하고, 1916년엔 둘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주변인들은 벤야민의 손에서 그레타와의 약혼반지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다. 1917, 드디어 전 남편 막스 폴락과 이혼한 도라는 두 살 연하의 발터 벤야민과 결혼한다.
이 시절부터 발터 벤야민과 관계를 맺게된 그의 친구 게르숌 숄렘 Gershom Scholem은 결혼 후 베를린 그뤼네 발트에 위치한 벤야민 아버지의 빌라에서 살던 벤야민과 도라가 매우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도라는 책 수집가였던 벤야민에게 진귀한 아동도서를 선물함으로써 아동도서에 대한 벤야민의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18년 이들 사이에서 아들 스테판 벤야민이 태어나고,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공황의 여파가 독일의 경제를 바닥으로 치닫게 했을 때 이들 사이엔 갈등과 싸움이 잦아지게 된다. 지금껏 경제적 궁핍을 모르고 살았던 벤야민에게 불황으로 인한 아버지 사업의 부진은 스스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으로 다가왔으며, 둘째 아들 벤야민에게 극진한 애정을 품고있던 그의 어머니는 벤야민의 아내 도라를 곱게만 바로보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던 도라 벤야민은, 프랑크프르트 대학의 교수임용에 실패하고, 출판사에 취직하거나, 고서적 상을 경영해 보려던 남편 발터 벤야민의 모든 시도가 좌절되자, 영어로 된 추리소설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전보 사무실에서 외국어 번역 비서로 일을 하면서 경제생활을 꾸려나간다. 이 시절 도라 벤야민은 게르숌 숄렘에게 자신이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안 집에서 한가하게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있는 벤야민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기도 한다.
Jura Cohn힘든 결혼생활을 지속하던 1921년 도라 벤야민은 남편 발터 벤야민에게 자신이 남편의 학교 친구이자, 시인이며 작곡가인 에른스트 쇼엔 Ernst Shoen과 사귀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 발터 벤야민이 아내의 이 외도에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발터 벤야민 또한 아내 외의 다른 여자와 연애 중이었다. 이 첫번째 애인의 이름은 Jura Cohn, 조각가이자 발터 벤야민의 학교 친구인 Alfred Cohn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 발터 벤야민의 두상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발터 벤야민과 이 예술가 여인 Jura Cohn과의 관계는 최소한 1925년 까지 지속되는데, 이는 그 해 출간된 그의 책 베를린 연대기 Berliner Chronik에 등장하는 그녀에 대한 헌정사에서 유추할 수 있다.
도라 벤야민은 남편의 친구이자, 자신의 애인이 된 에른스트 쇼엔과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이둘은 함께 런던으로 떠난다. 다른 한편 발터 벤야민은 1924, 이미 다른 글에서 소개한 바 있는 혁명가 여인 아스야 라키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1928년 베를린으로 온 그녀가 뒤셀도르프 거리 42번지에서 발터 벤야민과 함께 살게되는 동안, 런던에서 돌아와 애인 에른스트 쇼엔과의 관계를 청산한 도라 벤야민은 1927년부터 패션잡지 Die praktische Berlinerin'을 편집하는 일을 시작하고 그녀 스스로 표지 모델로 출연하기도 한다.
도라와 발터 벤야민의 결혼관계는 위자료 및 사후 처리를 둘러싼 오랜 동안의 고통스러운 줄다리기 끝에 1929년 공식적으로 이혼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이 이혼재판에서 패소한 발터 벤야민은 19304월 도라에게 높은 액수의 위자료를 지불해야 했다. 벤야민과 이혼한 후 도라는 아들 스테판과 함께 번역과 통역 일을 하면서 생활을 꾸려나갔고, 1930년엔 그녀가 직접 쓴 추리소설 Gas gegen Gas가 출판되기도 했다. 독일에서 나찌즘이 점점 더 독일 내 유대인들을 위협하며 성장해 가자 도라는 아들 스테판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 그곳에서 여생을 마친다.
베를린 격정의 시대'의 저자 Birgit Haustedt는 발터 벤야민과 도라의 결혼생활을 둘러싼 이들의 애정 스캔들을 벤야민이 직접 그에대해 긴 평론을 쓰기도 했던 괴테의 소설 Wahlverwandtschaft'의 그것과 비교하고 있다. 남편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아내와 그 남편의 이야기를 다룬 괴테의 이 소설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발터 벤야민과 도라 사이에 일어났던 애정편력의 모델이 되는 듯 하다는 것이다. 아내 도라의 애인이었던 Ernst Schoen, 남편 발터 벤야민의 애인이었던 Jura Cohn, 도라의 첫번째 남편이었던 Max Pollak, 벤야민의 약혼자였던 Grete Radt는 모두 발터 벤야민의 학교나 대학 시절의 친구들이자 그 동생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을 둘러싼 19세기 베를린 사교계의 '동종선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벤야민의 약혼녀였던 그레테 라트는 이후 벤야민의 애인이었던 유라 콘의 오빠이자 벤야민의 학교 친구인 알프레트 콘과 결혼한다.
참고문헌
Benjaminia, Eine biographische Recherche, Puttnies/Smith, 1991
Die wilden Jahre in Berlin, Birgit Haustedt, 1999
Walter Benjamin und sein Engel, Gershom Scholem, 1992

Walter Benkamin, zwischen den St?len, Werner Fuld,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