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마이클 잭슨의 재판과 미국과 독일의 사회적 진리

김남시 2005. 4. 21. 06:35
아동 성학대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있는 마이클 잭슨은 테레비젼 광고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자기를 믿어달라’고 호소한다.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딸에 대한 인공급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Terri Schiavo   의 부모는 언론과 방송의 인터뷰를 통해 일반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왜 이들은 그 재판과 판결에 직접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재판관이나 판사, 정치가들 대신에 자신의 팬들에게, 일반인들에게 언론과 방송에 호소하는 것일까.  

자신의 결백을, 혹은 자신의 억울함을, 자신의 올바름을 소위 대중 여론에 호소하는 것은 그 대중 여론이라는 것이 실제적으로 그러한 사회적 논란에 대한 사회적 판결의 실질적 힘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바로 대중들의 여론과 다수의 의견들이 사회적 판결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이는 어디에서보다 미국의 재판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몇몇의 전문가들대신 미국에선 소위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직업과 역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일반시민들로 부터 선출된 ‚배심원’이 다수결을 통해 재판의 최총판결을 내린다. 이들의 판결은 소위 이 사회의 ‚건전한 이성’을 대변하는 Common Sense로써 논란이 되고있는 사안에 대한 이 사회 공동체의 일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회 대다수의 일반 구성원들에 의해 옳다고 혹은 그르다고 수용되는 것이 곧 사회적 진리이며, 그에 의거해 사회의 사안들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입장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 사회 대대수의 견해가 혹시 이데올로기적 혹은 대중적 조작의 결과는 아닌지, 그들이 객관적이고 윤리적인 판단기준보다는 집단적 이해나 감정에 의거해 행동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질문들은 여기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Common Sense“에 대한 믿음에선 ‚여기, 지금’의 실천적인 삶의 맥락과는 동떨어져있는 객관적이고 초월적인 진리에 대한 추구는 관념적 낭비일 뿐이다.  

재판관과 판사들의 전문가가 논란이 되는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독일의 재판제도는 이와는 다른 철학적 기반에 서 있다. 여기에선 사회 대다수의 견해가 비합리적 감정과 개인적 이해관계, 이데올로기적 왜곡의 소산물일 가능성을 경계한다. 이러한 서로 다른 재판제도는 사회적 진리를 주장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낳는다. 미국의 재판장에서 검사나 변호사는 법 전문가들이 아닌 사회 일반인들의 평균적 감성이나 통념적 사유방식에 호소한다. 검사는 한 사건이 얼마나 „끔찍하게“ 저질러졌는지를 묘사하고, „선량하고 성실한 시민“이었던 피해자가 그 사건을 통해 얼마나 큰  „고통과 슬픔“을 겪게 되었는지를 강조한다. 그는 가해자의 과거 전력들을 일반 시민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이게끔  강조하고, 그가 사회에 남아있을 경우 발생하게 될 위험요소들을 부각시켜 배심원들의 불안심리를 자극한다.  백인보다는 흑인이, 경찰보다는 할렘의 시민이 재판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도 전문가들의 판단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우세한 견해가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 미국사회의 특징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재판이 독일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는 방송광고를 통해 자신의 팬들과 잠재적인 팬들인 시청자들에게 호소하기 보다는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뒷받침해줄 증거나 증인, 정교한 논거와 논증들을 확보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