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학자의 급진적 변신 : 황우석과 그 지지자들에 대한 단상

김남시 2006. 4. 29. 00:39

 

최첨단 과학을 주도하던 과학자와 그를 좇는 추종자들. 그들은 그 과학자의 진리를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르기도, 다른 사람을 감금하기도, 때론 타인을 폭행하기도 한다. 첨단 과학을 수행하던 과학자와 그 추종자들의 저 중세적 행동, 이 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이 이렇듯 자연스럽게 결합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 바로 이 도저한 Hybridity 속에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이 집약되어 있다. 도대체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저 잘나가던 첨단 과학자의 진리가 그를 둘러싼 비의적인 결사조직의 반 첨단적, 전근대적 행위를 통해서만 지켜지고’, ‘전파되는유사 종교적 교의로 변해버린 것일까.

 

과학의 진리성은 그것의 객관적 타당성에 있다. 사변이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삼는 과학은, 바로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만 과학으로 인정받는다. 한 과학적 발견, 과학적 실험의 타당성은 그를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때만 과학적 발견이자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그 증명이란, 한 과학자가 발견한 사실 혹은 그가 해낸 실험결과가 동일한 조건하에서 다른 모든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반복적으로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획기적 발견과 과학적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의 실험 결과가 다른 이들의 동일한 시도를 통해서도 가능한 것으로 입증되지 못한다면, 그의 발견이나 성공은 과학으로서의 객관적 타당성을 얻지 못한다. 이는 과학이 대상으로 삼는 자연이 동일한 조건과 환경 내에서 동일한 결과를 산출하는 소위 자연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 법칙의 보편적 타당성은 모든 과학적 행위의 기본전제다. 

 

누군가가 도달한 실험결과가 다만 그 특정한 인물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해도 그와 동일한 결과에 도달 할 수 없다면, 그 실험과 발견은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 과학이 아니라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마술이나 묘기에 다름아닐 것이다. 꽃을 살아있는 비둘기로 변신시키거나, 사람을 토막내었다 다시 붙이는 것이 마술인 이유는, 그것이 자연의 물리적 법칙을 따르고 있지 않으며, 그리하여 객관적 타당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건 그 마술사가 아니면 그 누구도 동일하게 실행할 수 없다.

 

자신의 과학적 발견과 실험결과가 마술이 아니라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 과학임을 입증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자신의 트릭을 발설하지 않는 마술가와는 달리, 자신이 사용한 방법과 절차, 재료, 그리고 그를통해 도달한 연구결과를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그를 객관적 검증에 맡긴다. 황우석은, 자신이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과학적 업적의 객관적 타당성 검증 과정에서 조작을 행했으며, 이를통해 그가 성공했다고 말하는 복제기술은 그 객관적 타당성의 입증과정을 통과하지 못했고, 그런 점에서 그가 행했다는 실험결과는 아직 객관적 타당성을 인정받은 과학이 아니다.

 

센세이셔널한 저널리즘에 힘입어 자신의 과학적 성취를 선전할 때부터 그는, 그의 성공이 과학적 연구의 객관적 절차와 방법이 아니라, ‘젖가락을 쓰는 한국인의 예민한 손끝재주 »에 달려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객관적 타당성이라는 과학적 진리의 기준을 개인적 능력재주의 차원으로 환원시켰다. 말하자면, 그가 이루었다는 과학적 실험은 그 누가 행하더라도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과학이 아니라, ‘예민한 손을 가진 사람만, 거기다 명민한 두뇌를 겸비한 자신만이 행할 수 있는 묘기 혹은 마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는 자기의식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의 연구논문이 조작되었음을 실토했음에도, 그래도 자신이 원천기술은 소유하고 있다는 그의 주장을 통해 더 강화되었는데, 말하자면 그는, 객관적으로 그 타당성을 입증받을 수 있는 과학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마술적 능력 ‘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과학자였던 그가 과학적 진리의 객관적 타당성 대신, 그만 소유하고 있는 저 마법적 능력을 강조하고 나섬으로써 황우석은, 객관적 타당성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자에서 신비로운 능력과 마술을 통해 사람을 모으는 사이비 종교가로 변신하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복제기술을 둘러싼 부풀대로 부푼 환상들 난치병들을 치유하고, 대한민국에 수조대의 자산 가치를 가져다 준다 등 은 그에게 기적을 행하는 종교적 교주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덮어쒸었다.

 

서울대의 공식 발표와 교수직 사퇴 이후 그가 보인 행보는 저 첨단 과학자 황우석이 자신에게 쒸어진 종교적 교주의 역할을 거부할 의사가 없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최첨단 과학자에서 유사 종교 지도자로 급진적 변신을 시도한 황우석은, 급기야 그의 종교적, 주술적 내공을 간파한 한국 불교계의 후원을 통해 날개를 얻게 되었고, 이를통해 그의 추종자들 사이엔 목탁을 들고 불경을 외는 승려들이 등장하게 된다.

 

사실상, 과학자 혹은 학자가 유사 종교 지도자로 변신한 사례는 서양 학문사에서 그렇게 드물었던 일은 아니다. 말년에 세계종교 주의를 주창했던 Comte, 자신이 발견한 자력을 통해 신비주의로의 길을 걸었던 Franz Anton Mesmer 등이 그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이들 19세기 유럽 과학자들이 밟았던 동일한 경로를 이제 21세기 한국의 과학자 황우석과 그의 추종자들이 반복하고 있다. 우린 그들 덕분에, 비록 200년이 뒤지긴 했지만, 세계를 향해 내세울 만한, 첨단 과학자의 급진적 변신의 사례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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