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의 주술화

김남시 2004. 4. 6. 02:09
 

선거를 앞두고 정치가들의 '씻김굿'이 한창이다. 새로 한나라당 총재가 된 박근혜는 한나라당이 그간에 저지른 정치적 과오들을 속죄한다는 의미에서 1080 배를 하려다 스님의 만류로 108 배를 했다. 민주당의 추미애 선거 위원장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심정으로“ 까진 무릅에서 피를 흘려가며 광주에서 세 발걸음을 걷고 한번 절을 하는 '속죄행위'를 행했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속죄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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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자신과 그 당의 설명에 의하면, 각각 한나라 당과 민주당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는 두 여인은 자신들의 속한 정당이, 구체적으로 말해 정당에 속해있던 정치인들이 저지른 탈법과 오류, 잘못된 판단과 언행들에 대해 '속죄'하는 통과 의례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정치 정당의 자기 혁신이 정치가 개인의 108배나 삼보일배와 같은 종교적, 제의적 속죄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속죄'나 참회는 종교적 행위에 속한다. 자신이 저지른 죄가, 자신이 행한 잘못이 인간의 힘과 의지만으로 해결되고 해소될 수 있는 차원을 넘어버렸을 때 사람들은 절이나 성당을 찾아 고해 혹은 참회의 의례를 거친다. 그리고 거기엔 자기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혹독하게 다룸으로써 얻어지는 초월적 체험을 통해 세속적으로 해소되지 못하는 삶의 문제를 관조할 수 있게 하는 고행체험 등이 포함된다. 카톨릭 국가들에서 자신의 몸을 채찍으로 때리는 속죄 행위가, 불교에서는 1080 배 등의 고행 등이 그에 해당된다.

인간 삶의 문제를 인간들 사이의 합리적인 소통과 타협의 방식을 통해 해결하려는 합리적 행위인 정치가 종교로 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은 이미 수백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 2004년 대한 민국의 정치가들은 기이하게도 저 오래된 제의적, 주술적 행위를 통해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선다. 그들은 정치가로서의 자신들의 정치적 행위 속에서 저지렀던 오류와 잘못들을 그 정당의 대표들의 제의적이고 종교적인 자기학대의 행위를 통해 '속죄'하겠다고 한다. 그들의 이런 행위가 그들이 주장하듯 단지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선정적인 '쇼'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그들 자신의 정치적 무능력을 드러내 주는 헤프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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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를통해 정치가로서의 자신들이 저질렀던 과거의 오류와 잘못들이 자신들의 또다른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는 해소되거나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손을 벗어난 초월적 '죄'였음을, 그리하여 그를 속죄하기 위해선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저런 속죄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도 각 당의 책임을 맡은 두 여인들의 선정적인 육체적 자학 - 추미애의 무릅에선 피가 흐르고, 절을 할 때마다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 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통해 저 정치인들은 스스로에게 자신들의 과거의 잘못과 과오를 정치적 행위를 통해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함께 고백하고 있다.

정치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주술과 제의의 힘을 빌어야 하는 21세기 한국의 무능한 정치가들은 이를통해 인류가 이미 오래 전에 탈마법화시킨 정치를 재마법화하려 한다. 이렇게 재마법화된 정치 속에서 이제 정치가는 더 이상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비젼을 추진하는 행동가가 아니라, 자학적 주술행위를 통해 정치를 심미화시키는 주술가가 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의 대표 정치가들의 컬트적 제의 행위는 20세기 초 히틀러가 연출해 냈던 컬트화된 파시즘의 정치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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