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내가 놓친 역사

김남시 2004. 3. 21. 06:38

kerze

 

 

인터넷을 통해 어제 광화문을 가득채운 수십만개의 촛불을 보았다. 그곳에 모인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모두 동일한 정치적 지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곳에서 얻었을 역사의 '체험'에 비하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저 고립된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그곳에 모인 수십 만명과 순간적으로나마 공유했을 저 '확장된 자기의식'의 체험은 이들 모두의 가슴에 살아남는 기억으로 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 저 개인들의 삶 하나 하나 속에서 그때 그때마다 다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기되는 '비의지적 기억' memoire involontaire 으로 그들의 현재의 삶과 융합될 것이다.

이제 기억의 장소가 되어버린 광화문 거리는 그곳을 지나다닐 사람들에게 더이상 매연과 밀리는 차량들로 짜증나게 하는 혼탁한 서울의 도시만은 아니게 될 것이다. '한때 수십만 개의 촛불로 밝혀졌었던' 광화문의 거리는 그를 체험한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아우라'를 얻었고, 기억의 빈곤으로 허덕이던 서울의 거리는 이를 통해 중요한 기억의 장소 하나를 얻었다.  

난 저 집합적 기억에 참여하는 기회를 놓침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소모해야 할지도 모른다. 저 체험을 통해 새롭게 변모될 한국인의 집합적 정체성에 난 어떻게 합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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