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붙잡힌 후세인 그후...

김남시 2003. 12. 17. 06:57
동상과 거대한 초상화로만 그 얼굴을 접할 수 있던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이, 빗지않아 헝클어진 머리와 다듬지 않은 지저분한 수염에 파묻힌 한 명의 기진맥진한 늙은이의 모습으로 티브이 화면에 등장했다.

사담 후세인이 붙잡혔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오히려 저 악명높은 부시의 '악의 축'이었던 그가 체념한 눈빛으로 수술용 장갑을 낀 미군 의사의 손에 이리 저리 '취급당하는' 모습을 보여준 그 몇 분의 비디오 화면을 통해 미국은 자신들의 목표를 훨씬 넘은 효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마치 지저분한 벌레 혹은 그로부터 병균이 옮을지도 모를 병원체를 다루듯 소독 장갑으로 무장한 저 대머리의 미군 의사는 - 우린 그의 얼굴도 보지 못한다. 그는 마치 베르메르의 유명한 그림에서처럼 그 뒷모습만으로 등장한다. - 그의 머리와 얼굴을 이리저리 눌러보고, 그의 입을 벌리게 해 입안을 들여다 보았다. 사자의 벌린 입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어 보는 서커스 조련사 처럼 그는 수백명의 미군와 영국군의 목숨을 앗아간 무시무시한 적장 후세인의 입을 벌려 그에 대한 자신의 완벽한 '조련'을 확인해 보여 주었다.

팔레스타인, 이집트의 언론들은 미군에 맞서 '자살폭탄'이라도 터뜨려 대항하지 않은 전 이라크 독재자의 비굴한 몰골을 비난하였고, 순식간에, 전 인류를 위협하던 악의 수장으로부터 한 명의 초췌한 늙은이로 변신한 후세인의 모습을 본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추스려야 했다.

무소불위의 압제자를 잘 조련된 한 마리 동물로 연출해 낸 미군의 필름은 전쟁 포로들의 모습을 공개해선 안된다는 제네바 협정의 위반 여부를 차지하고서라도,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가' 가 중요하게 된 오늘날 미디어 세계의 핵심을 집약하고 있다.

그에게 씌어져 있었던 무시무시한 악의 이미지들이 하루 아침에 붕괴해 버린 이제, 우리는 다른 질문들과 씨름해야 한다.

과연 그가, 2미터가 채 안되는 농가 지하 땅속 굴속에 쪼그리고 숨어있던 그가, 200 명이 넘는 미군 사상자를 낸 테러를 계획하고 지시했던 권력자였을까. 미국이 바라는 대로 그가 붙잡힌 후 이라크에서 미군에 대한 테러와 불안이 사라질 것인가. 점령군 미국에 대한 이라크 인들의 분노가 정말 한 명의 몰락한 독재자 후세인의 지휘하에 분출된 것이었을까.

보도에 의하면 미군들이 그의 은닉처를 급습했을 때 좁은 땅속 구멍에 쭈그리고 숨어있던 후세인은 그들에게 영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사담 후세인이다. 나는 이라크의 대통령이다. 나는 당신들과 협상하고 싶다".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할만큼 지치고 탈진한 그가 자기 자신을 '이라크의 대통령'이자 세계적 지명수배자 '사담 후세인'으로 호명한 순간,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그 'the 사담 후세인'이길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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