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치정사건과 사적인 복수

김남시 2004. 1. 3. 20:01
엽기적이라 불릴만한 치정사건들이 한창이다. 자신의 남편과 바람을 핀 고교 동창생 자식들을 목졸라 죽인 여인, 자신과의 연정관계를 청산하려던 남자에게 끓는 물을 부은 40대 아줌마, 내연관계 남자가 자신을 떠나려 하자 그의 아이들에게 청산가리를 먹여 살해한 20대 여인들.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발생하는 엽기적 치정에 의한 상해와 살인사건은 어쩌면 아내와 남편사이에 존재하던 도덕적 규범이 사적인 열정과 감정의 문제로 이행해 가면서 생겨난 행위규범의 혼란으로부터 발생한 것은 아닐까.

남편과 아내 외의 관계를 도덕적으로 부정한 것으로, 심지어 인륜을 거스르는 죄악으로 받아들였던 기존의 도덕적 관념이 지배적이던 사회에선 그런 관계를 갖는 당사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조차 ‚죄의식’을 느꼈을 뿐 아니라, 그 행위가 밝혀졌을 경우 그들이 감수해야 할 사회적 지탄과 고립 등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우린 서양과 동양 사회를 막론하고 전통적 사회에서 불륜을 행한 당사자들을 그 사회로부터 추방하거나 고립시켰던 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알고 있다. 외도라는 비생산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존재했던 이러한 사회적 규범과 도덕은 또한 외도를 통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의 심적피해를 최소한 윤리적으로 보상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남편 혹은 아내의 소위 부정한 연애행각을 통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그를통해 부정을 행한 남편 혹은 아내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악과 부정의 자리로 좌천시킴으로써 최소한 자신의 도덕적 결백함이라는 도덕적 우위를 지킬 수 있었다. 이를통해 이들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죄와 악에 의해 피해를 입은 선량한 피해자로써 입장에서 사회적 동정을 획득할 수 있었고, 악을 행한 그의 배우자와의 대비 속에서 긍정적인 도덕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결혼한 남편과 아내의 외도는 윤리적, 규범적 죄악이자 도덕적 치욕이라는 오래된 낙인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개인의 열정과 감정, 충동과 사랑 등이 최소한 미적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제 결혼한 남편 혹은 아내들 외도는 관습적 속박과 굴레로부터 이들 개인의 진실이 승리하게 되는 인간적 드라마로 여겨지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외도를 둘러싼 이러한 변화된 사회의 규범적, 도덕적 판단의 척도는 그러한 사건을 접하게된 당사자들의 심리적 상태에도 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남편 혹은 아내의 외도를 통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이제 더 이상 남편과 아내의 행위를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만 할 죄악으로 단죄함으로써 자신의 심적 피해를 보상받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여자 혹은 남자와 관계를 가진 자신의 남편 혹은 아내는 이제 어쩌면 자신에게도 존재할 사랑이라는 개인적 열정을 관습과 규범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을 뿐이다. 남편 혹은 아내의 부정을 발견한 당사자는 더 이상 사라져야 할 악으로부터 피해받은 선량한 선의 대변자가 아니라, 다만 모든 개인들에게 존재하는 열정, 감정, 충동을 규제하던 고루한 관습과 도덕의 옹호자로 등장한다.

더욱 비참하게도 이제 이들에게는 배우자들의 열정과 사랑을 붙잡아 둘 수 없었던 무능력, 매력없음, 진부함, 식상함과 권태의 이미지들이 들러붙는다. 이들은 이제 어쩌면 고루한 관습과 도덕을 따르는 것보다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를 사랑이라는 진실앞에서 무기력하게 돌아서야 하는 패배자에 다름 아니게 된 이들은 이제 자신의 분노와 좌절, 피해의식을 더이상 사회적 규범과 도덕에 호소함으로써 보상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외도를 행한 남편 혹은 아내의 행위가 이제 더 이상 이 사회 속에서 규범적 효력을 갖는 도덕과 윤리에 의해 지탄받을 행위가 아니라, 다만 개인들의 사적인 열정, 감정, 충동에 의해 자신에게 심정적 피해를 입힌 지극히 사적인 행위로 되어버렸다는 사정은 이제 이로인해 피해를 맛본 당사자들에게도 이전과는 다른 태도와 대응방식을 요구하게 된다.

외도가 우리 사회의 공동생활을 위협하는 반규범적, 반윤리적 행위가 아니라 다만 자신에게 심적인 고통을 주는 개인적, 사적 행위임으로 인해서 이제 그에대한 보복과 반응 역시 ‚사적인 방식’이 될 수 밖에 없다. 존재하는 사회적 규범에 자신의 패배와 고통을 호소할 수 없게된 저 피해자들은, 사회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개인적 진실을 위한 사적인 복수를 기획한다. 그리고 저 사적 복수들에는 여전히, 개인적 진실의 깊이가 그가 벌이는 복수의 처절함의 크기에 비례할 것이라는, 오래된 인류의 복수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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