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라크 전쟁과 국제 시민사회의 붕괴

김남시 2003. 3. 18. 08:05
미국이 유엔의 동의없이도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많은 나라들의 반대와 세계 도처에서의 반전운동에도 불구하고 미 대통령 부시는 자신의 전쟁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인다. 그것이 중동지역에서의 유정을 확보하려는 이유에서건, 아니면 유러화에 밀리고 있는 달러화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한 전략에서건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그나마 만들어져왔던 국가간 시민사회의 최소한의 규제와 민주주의적 가치가 함께 붕괴되어버린다는데에 있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댓가로 치루고 인류가 만들어낸 '국가적 시민사회' 유엔은 비록 한계가 많긴 하지만 칸트가 말하는 '세계 시민적 상태'의 초보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엔의 결의를 무시하는 미국의 처사는 그를통해 국제적 차원에서의 시민사회의 붕괴의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신호탄이다.

그리하여, 이제 그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들의 눈치를 볼 필요없이, 인접국을 폭격하거나 침략할 수 있으며, 그런 자신의 행위를 최소한의 가치기준에 의해 정당화할 필요성 조차 사라질 것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이렇게 하겠다는데 네들이 무슨 상관이야"라는 주장으로 대별되는 약육강식적 야만상태에서 모든 국가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자국의 국민들을 탄압하거나, 자국 내의 소수민족들을 학살하거나, 자국내 외국인 노동자들을 착취하더라도 더 이상 어떤 초국가적 비판의 목소리도 발휘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시민사회의 붕괴는 그러나, 또한 이를 초래하는 당사자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첫째로 미국은 더 이상 핵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국제사회의 위협요소'를 제거하려는 명분으로 정당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은 이미 그 명분을 통해 보호하려는 '국제사회'를 무시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제 미국 혹은 미국민에게 행해지는 테러를 미국은 더이상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혹은 '문명세계에 대한 침탈'로 비판하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보호해야할 '국가적 시민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근거 위에서 자라나올 전 인류적 차원에서의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와 인종을 초월한 생명의 가치 등의 규범들은 무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및 미국민들을 테러하는 테러범들은 다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사적 재제와 복수를 행하는 것일 뿐이고, 그에대해 미국은 또다시 범인을 잡아 법정에 세우는 대신 개인적으로 복수를 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며, 이를통해 마치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그렇듯 그칠 줄 모르는 복수와 복수의 소모전이, 증오와 적개심의 환란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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