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월드컵과 새로운 정체성 (쉬어가기)

김남시 2002. 6. 24. 00:33

시청 앞에서 함께 축구를 보는 경험을 해보진 못했지만, 이곳 독일 방송에서 연일 보여주는 시청앞에 운집한 사람들의 모습은 충분히 압도적이었습니다.

독일 언론들은 일본과 특히 한국에서의 축구열광에 대해 상당히 쇼크를 받았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아시아 국가와 아시아사람들에 대해 갖고있었던 선입견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남 앞에 나서기를 주저한다 는 등 -에 의거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인'들의 정체성의 드라마틱한 변화 등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자유대의 철학교수는 신문 대담을 통해 이를 한국인들에게 오랬동안 잠재해있었던 '자기경시 컴플렉스'와 관련해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오랜 침탈의 역사와 북한과의 대면이라는 불리한 상황, 미국에의 의존성 등으로 인해 한국인들에게 깊게 뿌리내리고 있던 불안과 자기경시 컴플렉스로부터 - 우악스러운 서구적 남성성에 기초해있는 축구에서 체력과 신체적 조건 면에서 우위에 있는 서구인들에게 승리하는 경험을 통해 - 해방감이 한국인들의 축구에 대한 압도적 열광의 이유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번 경험이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의 새로운 정체성 형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과연 그렇게 재 형성될 자기의식이, 긍정적인 것인가 혹은 부정적인 것인가 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이는 서구세계에 대한 오래된 열등감으로부터 새로운 자신감을 얻는 계기로 작용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 열광에 근저에 있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의식이 또다른 폭력적 집단주의로 귀결될 수 있는 여지도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그 교수는 정몽준이 곧 한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어제 한국과 스페인 경기 중계를 해주던 스포츠 해설가는 경기 초반에는 스페인보다는 한국이 독일에게는 쉬운 상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다가, 경기가 '센세이셔날 하게도' 한국의 승리로 끝나자 '초반에는 지치고 수동적으로 보이던 한국 선수들이 후반, 연장전이 될수록 생생해지는 현상'을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과 관련시켜 설명하고는 마무리를 짓더군요. 월드컵 경기를 대비해 6개월 이상 코치와 함께 합숙 훈련을 하는 등의 한국 축구 훈련 시스템이 이들에게는 매우 인상적으로 보였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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