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명과 야만

김남시 2004. 5. 22. 01:30
 folter

성난 이라크 민중들에 의해 숯덩이가 된 미국인들의 시신이 다리 위에 거꾸로 매달려 모욕당했을 때, 카메라 앞에서 한 미국 청년이 복면을 쓴 이슬람 테러 조직원들에 의해 목이 잘리워졌을때, 미국 대통령 부시는 이를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몇몇 미국의 보수 정치가들은 저들을 인간이 아닌 '짐승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이 즐겨 사용하곤 하는 저 문명/야만, 인간적/비인간적(짐승)의 대립구도는 이미 2001년 9월 11일 두 대의 여객기가 뉴욕 쌍둥이 빌딩에 자폭했을 때 이를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 선언했던 서구의 정치가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인류사에서 이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적 연원을 가진 소위 문명/야만의 대립 항 속에서 저 야만적인 이슬람 세계에 그로부터 지키고 보호해야할 서구사회의 문명을 대비시켰다.

folter그러나, 이라크의 포로 수용소에서 발가 벗겨진 이라크인들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미군과 손가락으로 성기를 가리키며 웃고있는 미군 여군, 나아가 심문 과정에서 그들이 사망시킨 이라크인 시체 앞에서 웃으며 기념촬영을 한 미군들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문명'은 그 멋들어진 외피를 벗고 그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문명과 야만의 저 악folter의에 찬 대립구도는 여기서 다른 형태들로, 곧 이라크 포로들을 '짐승처럼' 다루고 있는 세계 최고의 문명인 미군들에게서, 성난 이라크인들의 원시적 돌팔매질에 대항해 최신식 미사일을 갈겨버린 최정예 미군들에게서, 적의 목을 자르거나 그 시신을 모욕하는 저 오래된 인류의 원시적 보복 방식 대신 벌거 벗겨진 이라크 포로와 그 시신을 그들의 도착적 성적 상상력의 제물로 삼았던 미군들에게서 드러난다. 결혼식 하객들과 아이들을 한꺼번에 몰살시킨 이들의 최신식 미사일과 이슬람 포로들을 제압하는데 효과적인 육체적 심문과 고문 기술, 수없는 포르노와 패티시즘을 통해 양성된, 저들의 '문명화된' 도착적인 성적 욕구 속에서 드러나는 자랑스러운 '문명'의 흔적!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인들의 문명은, 그들이 이라크 folter점령의 이유로 내세웠던, 그러나 발견되지 않은 비인간적 대량 살상무기나 후세인 정권의 야만적인 폭정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더 참혹한 문명의 '야만'을 낳았고, 그것은 인류 3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의 이라크인들을 죽음과 능욕과 분노와 고통 속으로,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을 분노와 환멸 속으로 몰아넣었다.

아우슈비츠의 대량 살육을 체험했던 한 서구의 지식인이 던졌던 '왜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 상태에 들어서기 보다 새로운 종류의 야만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가' (아도르노, 계몽변증법, 서문)라는 질문은 30 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대답되지 않은 채 우릴 괴롭힌다. 살아있는 한 인간을, 그 누구나처럼 과거의 기억과 미래에의 희망을 가진, 그를 사랑하는, 그가 사랑하는 가족과 삶, '얼굴'을 가진 구체적인 인간을 저렇듯 짓밟고 살육하여, 그 고통 앞에서 웃으며 기념촬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저 맹목적 문명의 무감함...

오늘날 문명화된 인류가 빠져든 저 새로운 종류의 야만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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