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악과 의지

김남시 2005. 11. 19. 22:15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한 일들을 바라보는 두 태도가 있다. 하나는 도덕화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분석적 태도다. 이 중 더 뿌리깊은 건 세상의 모든 일들을 도덕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전자의 태도다. 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악한 일들의 배후엔 탐욕과 시기, 증오를 가진 악인이 자리잡고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심지어 그들을 죽게 만드는 모든 사건과 범죄들은 그런 악한 의지를 가진 악인들에 의한 것이며, 이는 그들을 사회에서 추방하거나 제거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수많은 신화나 우화, 나아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에서 우리는, 힘겨운 싸움을 거쳐 이러한 악인들을 물리치고 세계의 평화를 되찾는 선과 정의의 이야기들을 접한다. 그를통해,  우리는 이렇게 « 손쉬운 » 방식으로 이 세계의 악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곤 커다란 안도감을 얻는다.

 

그러나, 과연 이 세계에 존재하는, 혹은 발생하는 모든 악들이 정말 그 배후의 악한 의지에서만 생겨나는 것일까. 그리하여, 이 세계에 존재하는 악한 의지들, 곧 그 악한 의지들을 품고있는 악인들만 제거한다면 이 세계엔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선과 정의의 천국이 펼쳐질 수 있을까.

 

1945 11월에 열린 독일 뉘른베르크의 전범재판에서 나찌 전범들과 인터뷰를 했던 미국인 정신과 의사 Leon Goldensohn 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수십만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저 유례가 없는 거대한 악의 배후엔 도착적이고 광폭한 악의 의지를 지닌 악인들이 도사리고 있으리라고 믿었고, 재판에 회부된 나찌 전범들이 바로 그러한 악인의 전형들이라고 여겼다. 자신의 대화 상대자들을 유아기의 충격적 체험이나 왜곡된 정신 발달로 인해 다른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나 도덕 감정을 발전시키지 못한 악한 인간 괴물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들과의 분석적 대화를 통해, 무엇이 이 인간들을 저 거대한 악의 의지로 몰고 갔었는지를 밝혀내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믿음은, 15년 후 아이히만을 인터뷰한 한나 아렌트가 맞닥뜨렸던 것과 동일한 철학적 당혹감으로 변한다. 저 끔찍한 악을 일으켰던 악인들에게선 그가 가정했었던 어떤 거대한 악의 의지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고있는 대다수 사람들처럼 평범하고도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아버지이자 남편들이었고,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려 했던 소시민들이었다. 수십만명의 유대인들을 죽인 저 거대한 악은, 증오에 가득찬 거대한 악의 의지가 아니라 이들 평범한 현대인들이 살고 있었던 사회, 정치, 문화, 역사적 조건들의 무의지적 합작물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세상에 존재하고, 발생하며, 일어나는 악을 늘 그를 자행하고, 음모하며, 추진하는 악한 의지로부터 이해해왔던 세계관은, 이제 어떤 악한 의지도 없이 발생했던 저 거대한 악의 실제와 맞서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악을 악한 의지로 귀속시키는 이러한 믿음은 악의 근원을 타락한 천사, 곧 악마에게로 돌리는 신화 만큼이나 뿌리가 깊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역사적 체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세계에서 발생하는 들을 그 배후의 악인들의 존재로 환원시켜 바라보고 싶어하는 이유다. 미국 대통령 부시가 즐겨 사용하는 « 악의 축 »이란 단어는 그가, 혹은 그를 믿는 모든 아메리카인들이 여전히, 이 세계에 일어나는 악한 일들이 그를 조장하는 악한 의지의 소유자, 악인들에 의해 생겨난다는 저 오랜 신화적 믿음에 매달려있음을 보여준다. 마을에 돌던 전염병을 나쁜 의지를 갖고 마술을 부리는 마녀를 제거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마을 여자들을 붙태워죽였던 중세인들의 믿음을 가지고, 21세기의 미국인들은 현실의 악들을 일으키는 악인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붙잡힌 후세인이 재판에 회부되고, 수많은 테러조직의 구성원들이 미군이 운영하는 비밀 형무소에 갇혀 있음에도 현실의 악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걸 본다. 악의 배후로 지목되었던 후세인을 감금하고, 테러를 일으키려던 악인들을 형무소에 붙잡아 둠으로써 이들은 다만 저 실체가 보이지 않던 을 붙잡고, 때리며 고문할 수 있다는 심리적 위안감을 얻었을 뿐이었다.

 

오늘도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현실의 악들은, 오히려 우리가 저 악과 악인에 대한 신화적 믿음에서 벗어나야만 제대로 대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들을 섣불리 도덕화시키기 전에 그를 일으키게 했던 사회, 정치, 역사, 문화적 조건들의 특정한 배치들에 눈을 돌리는 분석적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악은 고정된 장소를 갖고 있지않다. 그건 특정한 조건들이 갖추어지면 어디서나 피어나는 곰팡이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