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황, 종교와 이성, 그리고 이슬람

김남시 2006. 9. 17. 05:53

 

교황, 종교와 이성, 그리고 이슬람 


2004년 1월 19일 독일 뮌헨에서는 바이에른 카톨릭 아카데미의 초청으로 당시 주교였던 Joseph Ratzinger와 철학자 하버마스의 토론이 열렸다. 세속화되고 탈종교화된 사회에서의 규범적, 윤리적 삶의 요구들을 어떻게 이성을 통해 확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해왔던 하버마스와 카톨릭 주교와의 이 대화는 이후 이 주교가 교황 베네딕트 16세로 선출됨으로써 이성과 종교라는 두 대변자가 벌이는 역사적 만남으로 받아들여졌다.1)

   

이 대화를 결산하면서 쓴 글에서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이성과 믿음, 이성과 종교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 관계(Korrelationalitaet)를 맺어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종교 내에 매우 위험한 병리 Pathologien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기독교 교부들의 믿음이기도 했던 그 병리은 우리로 하여금 신의 빛인 이성을, 그를 통해 종교를 늘 새롭게 정화하고 재정돈(ordnen) 해야할 하나의 콘트롤 기관으로 삼을 수밖에 없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보다 결코 덜 위험하지 않은, 아니 그 잠재적 효율성 면에서는 더 위협적인 이성의 병리, 이성의 히브리스(Hybris)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식했다. 원자폭탄이나 인간을 생산물로 바라보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이유로 이성 또한 마찬가지로 자신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나아가 인류의 위대한 종교적 전승들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만일 이성이 자신을 완전히 해방시켜 이런 배울 준비와 종교와의 상호관계를 거부한다면 이성은 파괴적인 것이 될 것이다....이에따라 나는 이성과 믿음, 이성과 종교 사이의 반드시 요구되는 상호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성과 종교는 서로를 정화하고 치유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를 인정해야만 한다.”2)            


서로 상호관계 속에 공존하는 이성과 종교, 곧 종교를 거부하지 않는 이성과 이성을 통해 이해되고 실천되는 종교는 라찡어 주교가 교황 베네딕트 16세가 되고 난 후에도 기회 있을 때 마다 강조하던 그의 단골 테마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 하는, 어쩌면 너무나 자명해 당연하게만 들리는 이 말이 얼마나 뿌리 깊은 기독교 중심적, 유럽 중심적 사고 속에서 자라나온 것이었다는 걸 우린 이번 주로 끝난 교황의 독일 방문기간 중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그가 말하고 있는 ‘이성’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넓은 의미의 이성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그의 이성에는 진화론을 이야기하는 이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번 주 레겐스부룩에서 행한 한 연설에서 교황은 특히 미국에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진화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 그는 “놀랄만한 방식으로 수학적으로 정돈되어 있는 우주와 인간, 나아가 인간의 이성이 비이성적인 것(Unvernuenftige)으로부터 기원했다고 설명하는” 진화론과는 달리, 기독교인들은 “이 모든 것의 시초엔 비이성이 아니라 영원한 말씀, 곧 이성이 서 있었음”을 믿는다고 말했다. 진화론이 인간종, 나아가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들의 기원으로 상정하는 저 “비이성적”인 최초의 원생물 (Urlebewesen)은 이성에 기초해 있는 종교, 곧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인 것이다. 기독교적 신앙을 이성에 기초해 있는, 이성의 종교로 이해하려는 그의 생각은 그가 레겐스부룩 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는 요한 복음서에 등장하는 세계 창조에 대한 사도 요한의 해석을 인용하면서, 기독교의 신은 다름아닌 이성을 통해 이 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창세기의 첫 구절을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고....신은 로고스로 창조 작업을 벌인 것이다. 로고스는 이성이자 동시에 말씀이다. 곧, 창조적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바로 이성으로서의 이성인 것이다.”3)


기독교 신의 세계 창조가 이미 이성이자 동시에 말씀인 로고스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교황이 주교 시절부터 관심을 갖고 강조하는 이성과 종교의 내적인 상호관계는 이미 이 세계가 창조되는 순간부터 본질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이성과 종교의 조화로운 상호관계는 이미 예정적으로 prädestiniert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한가지 유감스러운 점은, 이성과 종교의 이러한 초월적인 예정조화는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과 문화들에는, 곧 저 말씀과 이성을 통한 창조의 교리를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슬람교다. 레겐스부룩 대학 강연 중 교황은 이성에 기초해있는 종교가 결코 비이성적인 폭력과 결합되어서는 안되며, 그건 이성적인 신의 본성 자체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14세기 비잔틴 제국 황제가 이슬람교도와 벌였던 신학논쟁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말했다. “그 황제는 코란에 적혀있는 - 이후에 생겨난 - 지하드, 곧 성전에 대해 알고 있었다....황제는 놀랄 만큼 단도직입적으로 종교와 폭력의 관계에 대한 핵심적 질문을 자신의 대화 상대자에게 던지고 있다. 그는 말하길, ‘모하메드가 어떤 새로운 가르침을 가져다주었는지 내게 보여 봐라. 너는 다만 나쁘고 비인간적인 것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설파한 믿음을 칼로써 전파하라는 말이 그 예다.’ 그리고 황제는 곧바로 왜 폭력을 통한 믿음의 전파가 잘못된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신의 본질과 나아가 영혼의 본질에 모순되는 일이다. ’신은 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건 신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다. 믿음은 영혼의 열매이지, 육체의 열매가 아니다. 누군가를 믿음에로 인도하려는 이에겐 좋은 말과 올바른 생각의 능력이 필요하지 폭력과 위협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성적인 영혼을 설득시키기 위해선 팔이나 무기 혹은 그를 통해 누군가에게 죽음의 위협을 줄 수 있는 수단들은 필요하지 않다.‘ 폭력을 통한 개종에 반대하는 이 논증에서 가장 핵심적 문장은 ’비이성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신의 본질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교황은 나아가 위 신학논쟁을 편찬한 편찬자 Theodore Khoury 의 코멘트를 인용했다. “그리이스 철학의 영향에서 성장한 비잔틴인으로서의 황제에게 이 문장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이에 반해 이슬람 교리에서 신은 절대적으로 초월적이다. 그 신의 의지는 어떤 우리의 (기독교의) 범주에도, 나아가 어떤 이성적인 것 (Vernuenftigkeit)의 범주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교황은 신앙이 폭력과 공존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위해, 이슬람교를 믿음을 폭력을 통해 강요하는 비이성적 종교의 사례로 들었다. 이슬람의 신은 어떤 이성적 범주도 중요시하지 않으며, 그 가르침을 최초로 전파했던 모하메드는 나쁘고 비인간적인 것만을 이 세상에 가져다주었다. 비록 인용을 통해서이지만 이를 통해 교황은, 십자군 전쟁 이래 오늘날의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서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있다. 터어키를 비롯한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이러한 교황의 발언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그를 취소하고 사과하기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고조되고 있는 서구 사회와 이슬람 사회 사이의 긴장감을 폭발하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교황의 발언과 그것이 불러낼 문제들을 ‘매우 위험한 하나의 병리’라고 볼 수 있다.


종교의 병리를 이성을 통해, 이성의 병리를 종교를 통해 상호적으로 정화하고 치유하기를 원했던 가톨릭 교황이 자신의 발언을 통해 야기한 이 위험한 상황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그건 “교황의 무오류성” 만큼이나 오래된, 깊은 배제와 구분의 법칙이 이성과 종교에 대한 사고와 이야기 속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1) Joseph Ratzinger : Was die Welt zusammenhält. Vorpolitische moralische Grundlagen eines freiheitlichen Staates. In Jürgen Habermas & Joseph Ratzinger : Dialektik der Säkularisierung. Über Vernunft und Religion, Freiburg 2005. 서문 참조.

2) 위의 책 S. 56.

3) 강연 원문은 http://www.br-online.de/papst-besuch/teaser-re-li/benedikt-vorlesung-uni-regensburg.x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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