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통령 선거, 예외상황, 폭력

김남시 2008. 1. 1. 05:50

 

<정치신학 politische Theologie>에서 칼 슈미트의 논의로부터 출발, 예외 상황Ausnahmezustand에 대한 법적, 정치적 규정들과 그것의 역사적, 현실 정치적 의미들을 연구하고 있는 지오르지오 아감벤[1]에 따르자면 예외상황은 현존하는 법적[2] 질서 Rechtsordnung가 보류 suspendiert’ 되고 그를 대체할 다른 법적 질서가 정립되지 않음으로써 생겨나는 일종의 법적 공백 Anomie’ 상태를 불러낸다. 그러나 예외상황 내에서의 이러한 법적 공백 Anomie’ 은 그렇다고 해서 그 속에서 아무 규칙도 질서도 존재하지 않는 카오스적인 무정부 Anarchie’ 상태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데, 왜냐하면 여기에선 기존의 법적 질서들 자체는 그 유효성을 잃고 더 이상 적용되지 않게 되었지만 그 법적 질서들을 관철시키게 하던 집행적 exekutive Kraft혹은 폭력 Gewalt[3]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법이 없는 법의 힘이 관철되고 있는  예외상황의 역설적 상태를 아감벤은 유사한 테마를 다루고 있는 데리다의 책 제목 <법의 힘 Gesetzeskraft>을 빌어 법의Gesetzeskraft이라고 표현[4]한다. , 이전까지 유효하던 이 보류되어 그 유효성을 잃은 상태에서 그 법을 관철시키던 만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감벤에 따르면 이러한 예외상황은 오늘날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일상적인 통치 테크닉[5]이 되어버렸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테러 위협을 명분으로 선포된 예외상황들은 법으로 규정되어있던 개인의 자유와 행정권력에 대한 규제 기능을 보류시키고는 국가적 비상사태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법적 규제를 넘어서까지 집행권력을 확장시킴으로써 집행권 Exekutivgewalt이 실질적으로 입법권 Legislativgewalt흡수해 버리고 주권 기관으로써의 의회를 다만 집행적 권력이 제시한 규정들을 승인하기만 하는 기관으로 축소[6]시켜 버리는 경향을 낳았다. 이를통해 법 자체는 보류되고 무효화된 채, 원리적으로 그 법에 의거해있어야 할 권력(과 권력자)가 자신의 무법적힘과 폭력을 행사하는 상태가 오늘날 버젓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일상적 현실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이명박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과 더불어 그가 당선증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감벤이 말하는 저 예외상황에 비견될 수 있는 정치적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법적 질서들은 보류되어 유효성을 잃은 상태에서 어떤 집행적 힘이 그 사회를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지 않게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 예외상황의 주요한 조건이라고 한다면 현재 한국의 정치적 상태는 이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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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기존의 법적/사회적 질서들이 보류되고 유효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관찰될 수 있다. 현 정권과는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나는 야당 후보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의 인수위가 활동을 개시하면서 현재와는 크게 방향을 달리하는 법적, 사회적, 정치적 질서의 수립이 예견되고 있는 시점에서, 현 정권의 공식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여전히 유효해야 할 현재의 법적/사회적 질서들은 이미 특정한 부재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기존 법적/사회적 질서의 타당성에 대한 보류 suspendierung 이미 대통령 선거로부터 시작되었다.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여전히 공식적 권력을 부여받고 있는 대통령과 내각, 나아가 정권에 의해 세워진 법적, 사회적 질서들은 대통령 선거를 시점으로 비판받기 시작한다. 야당 대통령 후보에 의해 이루어지는 질서에 대한 이러한 비판과 공격은 그것이 체제 내적 개선과 개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 나아가 정권에 의해 이루어진 현재의 법적/사회적 질서의 교체와 변혁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것들은 이미 기존 법적/사회적 질서의 보류 향한 첫걸음이라고 일컫을 있다. 정권이 국민들의 신임을 많이 잃을 수록,  야당 후보의 정치적 지향이 정권의 그것과 대립적일수록 체제 하의 법적, 사회적, 정치적 질서들의 타당성은 근본적으로 문제시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이번 대통령 선거 기간을 통해 직접 경험한 바이다. 이는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통용되는 기존의 법적/사회적 질서가 실질적으로 정당성을 잃게되는 법적 공백 Anomie’  더 심화시킨다.

 

제도적 차원에서 과정은 대통령 선거를 주재하는 독특한 국가 기구,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대통령 선거라는 정권 교체의 정치적 절차는 집권 정부의 행정력으로부터 이탈되어있(어야한). 과제를 담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중앙선거관리 위원회는 선거 전반을 관리하고 주재하는 헌법 기관으로써 형식적으로는 국가 기구에 속하면서도 국가 기구를 관할하는 집행 권력 exekutive Gewalt 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을 소개하고, 선거와 개표를 주관하며 최종적으로 당선자를 공표하는 권력 이양 절차를 주재하는 선관위는 집권 권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관할하는 국가 기구의 내부에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의 집행력 외부에 존재하는 기관인 것이다. 사진에서 보듯 차기 대통령 당선자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공표하는 주체는 현재의 행정권력이 아니라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이다.  이를통해 중선위는 한편으로는 정권 하의 정치적, 법적 질서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정권의 정치, 법적 질서를 지양하는 새로운 정치적, 법적 질서로의 이행을 매개함으로써 결국 현재의 권력 자체의 소멸과 궁극적 해체를 주재하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유효해야 할 법적, 사회적 질서들이 실질적으로 보류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 새 정권이 약속한 법적, 사회적 질서들은 정립되지 않은 상태. 우리가 현재 대한 민국의 정치적 상황을 이러한 일종의 ‚Anomie 법적공백상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 속에서 현존하는 법적/사회적 질서들이 처해있는 상황은 게르숌 숄렘의 말을 빌어 아감벤이 정식화시키고 있는 의미없는 유효성 Geltung ohne Bedeutung“이라는 개념에 너무도 들어 맞는다. 현존의 법적, 정치적, 사회적 질서들은 비록 공식적 유효성 Geltung 갖고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내용없고 공허하게 bedeutungslos 되어버린 실행성Unvollziehbarkeit“ 형태로 등장[7]하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외교부로 흡수통합될 것이 이야기되고 있는 통일부는, 여전히 공식 국정기관으로서 유효성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업무들을 계속 실행시키지 못한다. 문화부로 흡수 통합될 것이 예견된 국정 홍보처는 실질적으로 기자 브리핑실 운영을 계속하지 못할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유효한 법적, 사회적 질서들의 이러한 실질적 비실행성 공무원 조직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들어 참여정부에서 추진했던 부동산 정책의 법적/사회적 유효성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누구도 단지 그것들의 유효성에 따라 집을 사고 팔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이제 실행가능한 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감벤이 정의하는 예외상황 Ausnahmezustand의 특징은 기존의 법적 질서가 보류되어 실질적인 법적 공백 Anomie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법이 없는 법의 힘/권력/폭력이 사회/국가의 질서를 여전히 유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법적/사회적 질서들이 유예되고 보류됨으로써 열린 무법적 공간무정부적 상태로 이어지지 않도록 유지하고 지배하는 힘은, 많은 경우 독재 권력에로 이어지는 행정적 폭력이다. 아감벤에 의하면 <정치 신학>에서의 칼 슈미트처럼 주권자 Souveräne예외상황을 결정하는 자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nzustand entscheidet [8]라고 정의하고, 주권자에게 법적 질서가 유예된 상황에서 국가의 존속을 위한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그리하여 법적 규범의 타당성보다 우월한[9]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법적 질서의 근거를 궁극적으로 주권자적 권력(=폭력 Gewalt) 정초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떤 이유에서든 수시로 발생할 있는 법적 공백의 위기 상황을 예외상황 통해 여전히 법적 관계 속으로 묶어두려는 국가 권력의 픽션[10] 다름아니다. 

 

아감벤이 설득력있게 슈미트에 대립시키고 있는[11] 발터 벤야민은 법적 질서의 근거인 폭력을 주권자적 폭력에, 법치적 juristische 컨텍스트에 묶어두려는 슈미트와는 달리 그를 법치적 영역의 외부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힘으로 위치지우고자 한다. 벤야민이 신적 폭력, 순수한 폭력 reine Gewalt이라고 지칭하는 폭력은 법적 질서의 근거를 현실 정치의 합법/비합법의 구분을 초월해 법치적 컨텍스트 외부에 있는 메시아적이고 혁명적인 에너지에 정초 [12]시킴으로써 우리에게 현존하는 정치 질서의 논리에 붙들리지 않으면서 현존의 정치질서를 변화시킬 있는 혁명과 같은 정치적 행동의 가능성을 가져다 주는[13]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현재 한국의 상황에 적용시켜 본다면 우리는 현재 한국의 실질적인 법적 공백상태 예외상황으로 유지시키고 있는 하나가 대통령 직무 인수위라고 하는, 입법, 사법, 행정권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하나의 임시적 전권 조직이라고 말할 있을 것이다. 인수위는 현재 한국의 실질적 아노미 상태를 일종의 정권 이양기의 예외상황이라고 선포함으로써 현재의 실질적인 법적 공백에 법적/정치적 연속성이라는 픽션을 부여하고 있다. 엄연히 아직 기존의 국가조직들이 유효하고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수위에게 주권적 권력의 아우라를 부여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 „군기잡는 인수위“, „정부 부처들 바짝 긴장“, „폐지 거론된 부서 생존을 위해 안간힘  - 언론들도 이러한 예외상황적 질서 유지에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던진 말고는 아무 다른 정치적 행동의 가능성도 갖지 못한 우리들은 이제 다만 기존 정부 부처와 인수위, 기존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자, 여당과 승리한 야당이 벌이는 정치권의 각축 만을 손놓고 바라보고 있는 관객으로 전락하였고, 그럼에도 존재하는 상태의 변화를 갈구하는 메시아적, 혁명적 에너지는 이렇게 제한된 정치적 행동의 가능성 속에서 다만 차기 정권의 새로운 법적/사회적 질서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만, 주권자적인 강한 정치 지도자에 대한 위험한 열망으로만 투사되고 있다. 얼마전 특검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회 난투극에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물리적 싸움을 벌이던 국회의원들의 결연한 폭력이 결국엔 특검법 통과를 상징하는 의사봉을 빼앗거나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싸움에 다름아니었다는 사실은, 법적 질서를 정초지웠던 근원적 폭력이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 만큼이나 제도적, 법치적 절차에 초라하게 갇혀버렸는가를 보여주는 징후에 다름 아니었다.

 

아감벤이 역설하듯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상화된 예외상황은 법과 규범이 삶의 영역에로 침입해 그를 복속시키는 생체-정치 Bio-Politik적 흐름을 가속화시키며 우리의 정치적 행동의 여지를 점점 좁혀가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함축하고 있는 삶과 법, 아노미와 노모스의 결합이라는 픽션 Fiktion의 마스크를 벗기고 그를통해 그것이 결합시키려고 했던 것을 분리시키는 끈기있는 작업[14]이다.



[1]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Frankfurt/M, 2004.

[2] 한국어로 모두 혹은 법적이라고 번역되고 있는 Recht, Gesetz, juristisch 등의 서로 다른 의미를 구별해 있는 번역어가 절실하다. 독일어로 Gesetzeskraft 번역되는 데리다의 제목을 힘으로, 벤야민이 <폭력 비판>에서 이야기하는 rechtsetzende Gewalt 정립적 폭력이라고 모두 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주제를 둘러싼 논의들, 특히 아감벤의 이론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문제를 일으킬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다른 글을 기약한다.

[3] 법이 부재하는 상태에서() 작동하는 이러한 Gewalt 대표적 사례로 발터 벤야민은 Verordnungsrecht를 통해 경찰에게 부여되어 있는 집행적 폭력 Gewalt 들고 있다.이러한 경찰의 폭력은 문명화된 국가의 일상적   전역에 퍼져있지만 어디에서도 파악되지 않는 경찰의 유령적인 모습과 마찬가지로 무형적 gestaltlos이다.„ Walter Benjamin : Zur Kritik der Gewalt, GS II-1, S.189.

[4]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Frankfurt/M, 2004, S.49.

[5]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Frankfurt/M, 2004, S.24.

[6]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Frankfurt/M, 2004, S.26.

[7] Giorgio Agamben : Homo sacer. Die souveräne Macht und das nackte Leben, Frankfurt/M, 2002, S. 62.

[8] Carl Schmitt : Politische Theologie. Vier Kapitel zur Lehre von der Souveränität, München & Leipzig 1934. S.11.

[9] Carl Schmitt : Politische Theologie. Vier Kapitel zur Lehre von der Souveränität, München & Leipzig 1934. S.19.

[10]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Frankfurt/M, 2004, S.71.

[11] 아감벤은 <정치신학> 발터 벤야민의 <폭력 비판을 위하여>에서 제기한 폭력과 예외상황에 대한 슈미트의 응답이며, 나아가 벤야민의  <독일 애도극의 기원>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응답에 대한 벤야민의 결정적 반박이라고 독해한다.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Frankfurt/M, 2004, S.64 ff.

[12]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Frankfurt/M, 2004, S.72. 이러한 점에서 <폭력 비판을 위하여> 마지막 문장 Die göttliche Gewalt…mag die waltende heißen.“ 신의 폭력은 아마도 주권적인 것이라고 불릴 있을 것이다라고 옮긴 진태원의 번역은 (자크 데리다 <법의 > , 문학과 지성사 2004 부록) 슈미트적인 주권적 souveräne 폭력에 대립되는 벤야민의 신적 폭력 대한 무지 혹은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 벤야민이 신적 폭력을 waltende 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다른 폭력들 ( 법정립적-, 법보존적 폭력)과는 달리 자신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 Mittel이나 재현 Repräsentation 아니라 다만 직접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그러한 점에서 순수한  rein  신적 폭력의 특성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S.75 참조. 자크 데리다로 하여금 벤야민의 이름 „Walter“ 와의 신비주의적 연관성을 상상하게 했던 (Jacque Derrida : Gesetzeskraft, S,114.) 단어 walten 직접 현전하면서 지배하는신적 폭력의 이러한 특징을 드러내기 위한 단어다.

[13]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Frankfurt/M, 2004, S.71.

[14] Giorgio Agamben : Ausnahmezustand. (Homo sacer II.1), Frankfurt/M, 2004, S.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