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계급적 차이가 느껴지는 사회

김남시 2001. 8. 9. 07:40
계급사회의 신분적 질서가 급작스럽게 몰려든 산업화, 자본주의화 - 이를 동반한 '졸부'들의 등장까지 - 등으로 인해 유야무야 되어버린 한국사회와는 달리, 20세기 초까지도 계급적 신분질서가 유지되어온, 더구나 프랑스에서처럼 폭력적 혁명을 통해 그 계급적 신분질서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형성되지 못했던 독일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소위 계급적 기질, 질서감각, 정서등은 그 어디에서보다 분명한 듯 하다.

귀족적 생활을 동경하며 모방하려 했던 부르조아 계층은 자신들의 삶의 도덕적, 미적 우월성을 삶과 생활에있어서의 질서와 규칙, 관계와 도덕적 철저함을 통해 드러내려 했다. 그들에게 있어 확립되어 있는 사회의 질서는 유지되어야 하며, 규칙은 준수되어야 하고, 사적 용무와 공적 업무는 엄밀히 구분되어야 함은 물론, 삶의 사소한 도덕적 규칙들은 엄격히 이행되어야만 한다. 사실상의 그들의 삶이 이 모든 것들을 다 준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삶의 원칙은 "그러하지 않다, 하나 어쩔수 없었다"고 표명됨으로써 보호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네오나찌는 독일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걸고 기껏 유지시켜 놓았던 오늘날의 사회질서를 파괴할지 모르는 세력으로 불쾌감을 주며, 그들이 주장하는 민족주의의 구식성, 촌스러움이 그들의 '교양있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심성'에 들어맞지 않기에 못마땅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나찌 혹은 독일 민족주의란 우매한, 광기어린 어리석은 인간들이 저질렀던 부끄럽고 천박한 과거를 상기시켜주는 매개체이며, 이는 유럽의 중심국가로,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우월함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독일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시킬 것이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협소하고 편협한 자국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세계의 문제'를 끌어안을 만큼이나 여유로와진 독일사회의 놀라운 번영과 포용력을 과시할수있는 대상이며, 개인적으로는 그를통해 자신들의 휴머니즘적 가치를 발산할수있는 기회의 대상이기도하다. 외국인들에게 nett 하다는 것은, 독일 중산층으로서의 여유로움을 과시하는 제스쳐이자, 그를통해 자신을 하나의 세계시민으로 고양시켜 주는 징표이다.

그러나, 그 외국인들이 그들의 고결한 질서의식이나 위생관념, 혹은 도덕적 규칙들을 위반하는 것으로, 그리하여 그들의 부르조아적 자긍심을 손상시키는 불쾌한 존재로 드러났을때, 그들의 참을성은 그 한계를 드러낸다. 그 순간 그들이 외국인들에게 베풀었던 호의와 동정은, 철저히 이기적인 자기방어로 돌변하며, 그 이상 자신의 이해관계의 영역내로 그 이방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과의 교제는, 그래서 매우 불편한 심리적 영향을 낳는다. 난 그들이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부르조아적 가치에 나 역시 동의하며, 그 가치의 우월에따라 행동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한껏 보여주거나, 아니면 아예 저 "미개한" 가치와 생활습관 속에 젖어 아직 "계몽되지 못한"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들로부터 동정어린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과 나의 관계는, 그들이 또한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직업적 성실성, 의무에의 충실함이라는 범주안에서만 유지되는 형식적인 것으로 변모해버리고 만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의무이기에 나를 대하고, 나와 교제하지만, 그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더이상 나에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난 그들 앞에서 한국에선 개고기를 먹는다라고, 심지어 나 역시 즐겨먹었었다고 말할수 없으며, 독일사회나 역사가 안고있는 문제점들을 끄집어내어 그들의 자존심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

반면, 이와는 다른 계급적 성향을 지닌 독일인들도 있다. 그들은 잰체하는 독일인들의 호기로운 자긍심을 비꼬며, 자신의 삶을 낡은 의무적, 도덕적 가치에 정향시키려 들지않는다. 자신의 삶이 독일사회가 마련해준 계급적 질서 속에서 크게 이득받은바 없음으로 해서 이들은, 독일사회의 '질서', 그질서를 유지시키기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역설되는 규칙들에의 강박적 준수를 냉소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에 계급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음으로해서, 대체로 외국인과 외국문화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며, 그들이 알지못했던 어떤 놀라운 문화를 접하거나 들었을때에도, 그것이 존재할수있는 가능성과 개연성을 충분히 인정하려 든다. 그들은 현 독일사회의 규칙과 관습들의 불합리함을 '외국인 앞에서도' 비판할수 있으며, 그것이 독일인으로서의 자신들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을만큼 상대화시킬 능력을 가진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겐, 따라서 오히려 지나치게 서양문화 혹은 서양적 가치의 우월함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지 않는 것이 좋다.

독일에 사는 외국인, 특히 한국인이 범하기 쉬운 실수 중의 하나는 이러한 계급적, 기질적으로 구분되는 독일인들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 그것도 자기자신과 자기문화를 깍아내림으로써 상대를 치켜세우는 저급한 방식으로 - 호의적이려 하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받은 한번의 상처를 통해 독일인들 모두로부터 거리를 취하려 함으로써 스스로 고립되거나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라고 살아온 사회, 그 속에서 익숙해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전혀 다른 사회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따라서 꽤 힘겨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베를린, 베를린'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 11일 뉴욕 사진전  (0) 2002.07.15
자유냐 안정이냐?  (0) 2001.10.29
독일의 문화적 정체성  (0) 2001.01.02
독일 학생들에 대한 사회적 혜택  (0) 2000.10.15
독일대학의 정치포스터  (0) 2000.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