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독일대학의 정치포스터

김남시 2000. 10. 10. 00:14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곳 독일대학엔 대자보가 없습니다. 대신 약100여미터에 이르는 커다란 대학 홀에 사방으로 수많은 포스터들이
잔뜩 붙어 있습니다. 방을 구하거나 방을 내놓은 작은 전단지에서부터 각종 행사 및 심포지움, 전시회, 등의 포스터, 나아가 각종 정치 단체들의
정치적 구호가 걸린 포스터까지. 정치적 슬로건을 내건 포스터들의 다양함은 이 곳이 그 어떤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이념도 이성적 논증을
거치지 않은 채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개방된 사회임을 알려 줍니다.

오늘 보았던 포스터 들 만 해도 그러합니다. 좌파, 사회주의학생연맹에서 내걸은 포스터에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네오 나찌즘에 반대하는 구호가
적혀 있습니다. NAZIS RAUS! (나찌는 꺼쪄라) .라고 그 구호 아래에는 네오나찌 젊은이들의 집회사진 위에 커다랗게 X표가 그어져 있으며,
오는10월 베를린에서 이들에 반대하는 데몬스트레이션이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좌파, 사회주의 정치 포스터에는
<세계적으로문제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운동의 구호가 적혀있습니다. Widerstand gegen Neoliberalismus weltweit! 전 세계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반대를! 이라고. 그 아래엔 신자유주의와 관련되어있는 일련의 사회적 이슈
들의 목록이 적혀 있는데, 핵문제, 제삼 세계의 빈곤, 환경파괴, 대학 등록금(이에 대해선 다음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겁니다) , 어린이 노동, 연금
삭감등이 그것입니다. 그 아래엔 이에 반대하는 시위 계획이 있는데 9월23일엔 '이제부터 아름다운 삶을' 이라는구호로 베를린에서, 9월26일엔
프라하에서 IWF와 세계은행에 반대하는시위가 열린다고 나와 있습니다.

한편, 대학 홀에는 네오나찌주의 단체가붙인 포스터들도 나란히붙어 있습니다. 여기엔 직접적으로 네오 나찌즘적인 구호 , 예를들면 , 외국인
및동성연애자 추방(이에대해서도다음에자세히다루겠습니다.) , 독일을 독일인 들에게 등의 구호가 적혀 있지는 않습니다.
오늘본 포스터는 Corps Baltica-Borussia라는 이름의 단체가 붙인 것으로, 포스터에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전통과 결속 으로, 재미있게, 등의 애매
모호한구호가 적혀 있으며, 관심있는사람들이 연락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혀있습니다. 이 포스터가 네오나찌 단체의 것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포스터 위에 붙어 있었던 '반 파시스트 학생연합' 명의의 반박 찌라시
덕분이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올 10월 학내에서 네오나찌 학생단체들의 정체와 그들의 실상을 폭로하는 기획전이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좌파에서 우익 나찌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정치세력들의 포스터가 나란히붙어있는 대학 구내는 어쩌면 독일사회 전체의 작은 축소판으로도
보입니다. 이들은 어쩌면 이처럼 다양한 색깔의 견해들이 공존하는것 - 물론, 네오 나찌즘에 대해선 대다수의 독일 정치가 및 일반인들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만, - 이 지극히 당연하며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 합니다. 그들 사이의 논쟁과 그를 통한사회적설득 과정을
통해 결국 가장 이성적인 행로를 찾아나갈 것이라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빨갱이나 네오나찌주의자들의출현'에도 당황하지않는 독일인들
특유의 낙관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듯 합니다.

그러나, 히틀러와 홀로코스트를 낳은 이 곳 독일의 토양이, 통일 이후 어쩌면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겪고있는 현재를 정녕 이성적으로 극복하게할
수 있을지, 여실히 지켜보아야 할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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