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독일의 문화적 정체성

김남시 2001. 1. 2. 05:29
최근 독일의 한 보수 정치인이 독일의 Leitkultur에 대해 언급해 논란이 되고있다. 요는 도대체 현재 독일을 주도하는 문화는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왜 이 문제가 한동안 매스컴과 신문 사설들을 떠들썩하게 차지하는 hot issue가 되었을까? 그건 이곳이 바로 독일이기 때문이다.

독일 혹은 독일 민족, 독일적 전통, 독일 전통문화 등의 단어는 한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독일의 공공 영역에선 거의 언급될 수 없었던 금기의 단어들이다. 그건 이 단어들과 더불어 부인할수 없는 독일의 한 부분이었던 독일의 과거, 곧 나찌즘의 역사 때문이다.

히틀러는 그의 주저 '나의 투쟁'에서 독일적 문화, 아리안족의 전통들을 나찌 이데올로기와 결부시켰다.
'오늘날 지상에 사는 우리들을 찬탄하게 하는 모든 것 - 학문과 예술, 기술과 발명품들 - 들은 몇 몇 소수의 민족, 아마도 근본적으로는 한 인종Rasse의 창조적 생산물들이다. 이 모든 문화들을 지속시키는 것 역시 그들에게 달려있다... 오늘날 우리가 소유하는 인류의 문화와 예술,학문과 기술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 아리안 민족의 창조적 생산물들이다. 아리안 민족이야말로 고귀한 인류 전체의 정초자이며, 인류의 프로메테우스이다.' in Rasse und Arier, Mein Kampf

나찌시대, 독일의 전통과 아리안 족의 문화는 인류 모든 중요한 문화들의 근본이 되는 가장 고귀한 문화로 선전되었으며, 그를 통해 그 문화를 '순수하게' 유지하고 확산시키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인종들에 의해 지배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과제라고 가르쳐졌다. 이를통해 독일의 전통, 독일적 문화는 나찌즘과 분리시키기 힘들 정도로 결합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독일의 전통문화, 다른 문화들로부터 그 순수성이 유지되고 보존되어야 할 그런 문화를 주장하는 자는 오늘날 독일 사회에선 외국인, 외국 문화를 혐오하는 네오 나찌 혹은 편협한 민족주의자로 간주된다.

패전국 독일은 패망한 독일의 산업과 경제 부흥을 위해 정책적으로 많은 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들였으며, 이는 70년대 말까지 독일의 외교정책의 주요 과제의 하나였다. (당시 한국에서 광부 혹은 간호사로 독일로 이주해온 세대들과 그 2세대가 오늘날 독일 한국 교민들의 근원을 이룬다.)

독일 전통, 독일 문화에 대한 금기시, 나름대로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 혹은 확산 시키며 독일에서 정착한 수많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독일인들은 난감한 딜레마에 맞닥드려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금기시된 민족적 전통에서도 그렇다고 현재의 독일을 지배하고 있는 터어키, 그리이스 혹은 미국의 문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도대체 독일인, 독일 문화의 정체성은 어디서 찾을수 있는가? 오늘날 소위 '독일을 주도하는 문화'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독일이 처한 문화적 정체성 문제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내가 만난 독일 학생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일엔 복수의 문화 verschidene Kulturen 와, 다양한 인종들이 존재한다. 하나의 독일 문화, 주도적 문화 eine Leitkultur 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웃 프랑스에 비해 외국문화, 특히 미국 문화에 개방적인 독일과 독일인들,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이 없는, 아니 그에 묻은 핏자국을 아직도 건드려서는 안되는 상처로 가지고 있는 독일사회, 그 속에서 독일인도, 터어키인도, 미국인도 아닌 보편적 문화적 인간이길 자처하는 독일의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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