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사적 소유와 감각의 해방

김남시 2004. 2. 21. 08:29
경철초고에서 칼 맑스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대상에 대한 모든 감각들, 곧 만지고,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맡고, 맛보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교통을 가능하게 하는 이 감각들을 단지 사적으로 ‚가진다’라고 하는 소유 감각으로만 축소시켰다고 말한다. 사적 소유관계 하에서 „한 대상은 나만의 자본으로 존재하거나, 내가 그것을 먹거나 마시거나 내 몸에 지니거나 그 안에 살게되거나 한 한에서만, 간단히 말해 우리에 의해 사용될 때에만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된다." (Karl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in Schriften, Manuskripten, Briefe bis 1844, Berlin Dietz, S.540)

맑스는 나아가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다만 '소유한다'고 하는 감각으로 축소시킨 사적 소유제가 폐지되어야만 비로소 모든 인간적인 감각들이 완전한 해방을 맞게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적 소유제 하에서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인간이 생산해낸 물건들을 만지고, 보고, 느끼는 감각적 향유를 다만 그것을 사적으로 소유하고서야 누릴 수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자신의 소유가 아닌 많은 사물과 대상들에 대한 감각적 접근 가능성을 차단시켰다는 거다. 내 지우개 만지지마.  내 책 보면 안돼!  내 장난감 가지고 놀지마...  

맑스가 꿈꾸었던 인간의 모든 감각들이 해방된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곳에선 말하자면 어떤 대상이 구지 나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난 그것을 만지고, 보고, 듣고, 냄새맡고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모든 재화들이 공유되어 있어 그 누구도 특정한 대상들에 대한 독점적인 감각적 향유를 주장하지 못할 그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연과 그로부터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재화들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서도 함께 향유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맑스가 꿈꾸었던 저 인간 감각의 해방은 맑스가 꿈에도 생각치 못했을 엉뚱한 장소에서 실현되고 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집어 먹어볼 수 있는 음식들로 가득찬 백화점 식품부, 스스로 만져보고, 입어보고 살 수 있도록 되어있는 옷 매장과 직접 작동하고 들어볼 수 있는 티브이, 라디오, 전자제품 매장, 시승을 가능케하는 자동차 매장 등 새로운 자본주의적 상품시장...  

다만 여기선 사적소유와 인간 감각의 관계가 뒤바뀌어 있을 뿐이다. 누구나 먹어보고, 만져보고, 들어보고, 타 보고, 입어볼 수 있으나 그 물건들은 다만 돈을 지불한 사람들에게만 소유된다. 누구나 만져보고, 누구나 타보고, 누구나 입어볼 수 있는 것들을 그래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다는 것이 주는 흥분!  우린 1844년의 맑스가 아직 알지 못했던 새로운 소유의 감각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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