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장국영의 죽음과 변화된 세상

김남시 2003. 6. 4. 03:50
장국영이 자살했다는 사실에 세상이 무너진듯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발달된 복제기술로 인해 우린 그의 사진, 그의 목소리, 그의 몸짓과 행위를 언제든지 다시 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어차피 그를 그러한 복제의 매개를 통해 접할수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던 배우나 가수가 '죽었다'는 사실을 통해 이 세계가 변화했다고 믿는다.

살아있는 인간 장국영과 어떤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접촉도 가져보지 못했던 이들이, 다만 장국영의 목소리, 그의 얼굴과 몸짓을 '복제매체'들을 통해 접했었던, 그리하여 다만 시각적, 청각적으로 '가상적으로' 접했었던 이들에게, 인간 장국영의 물질적 현존은 사실상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것은 다만 이 사진속의 그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 영화의 배우인 그가 내가 살고있는 지구 상의 어딘가에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불확실한 믿음만을 던져주었을 뿐이다.

(그것이 불확실한 믿음인 이유는 만일 장국영이 이미 오래전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소식'을 알지 못했다면 우린 여전히 그의 실존을 믿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실존'은, 그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직접 지각을 통해 확인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실존'은 다만 그의 '실존에 대한 정보'를 통해 믿게된 것일 뿐이다. 그건 마치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목사의 정보를 믿음으로써 신의 실존을 확신하고 있는 기독교신자와 마찬가지다. 우린 그의 정보를 '믿고', 그를 통해 그의 실존을 다만 '믿고' 있던 것이다. 장국영이 죽었다는 사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장국영이 죽었다는 '정보'를 듣고 우린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 장국영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을 바꾼다. 우리가 그의 죽음을 직접 확인해볼 수 없는 이상, 그의 죽음에 대한 정보는 다만 우리의 '믿음'에 의해서만 실제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살아있던 인간 장국영이 죽었건, 살아있건 우린 여전히 그의 노래를 듣고, 그의 영화를 보고, 그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을 수 있다. 이전과 변화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더이상 저 노래와 영화와 사진들을 통해 알게된 인간 장국영이 더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 믿음에 의해 어떤 이들에게 세상은 더 이상 이전같지 않고 그의 삶은 더이상 이전과 같지 않게 변화되어 버렸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 변화된 믿음에 의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길을 택할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장국영과의 직접적 접촉이 아니라, 다만 '살아있는 장국영의 가상'만으로 그의 실존을 믿었던 이들은, 이제 '장국영의 죽음'이라는 가상을 통해 그의 죽음을 믿는다. 그의 실존 혹은 죽음은 그것이 모두 매개된 정보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세계의 가상'에 다름 아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창조된 사이버 가수나 배우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모든 것이 가상화된 세계의 사정이 깔려있다. 사이버 배우의 목소리와 사진, 영화를 볼수있는 우리는 살아있는 배우 장국영의 목소리, 사진, 영화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그 사이버 배우의 '실존'을 믿어마지 않을 것이다. )

어쩌면 그것은 '세계의 가상'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적 믿음'일지도 모른다. 장국영은 살아있다 혹은 장국영은 죽었다는 소식에 대한 믿음은, 마치 이 세계가 거북이 등에 얹힌 원판과 같다는 데에 대한 믿음과 유사한 것이다. 세계가 경탄할만한 신의 보석세공이라고 믿는 이들이 그 믿음에 의해 자신의 삶의 실천적 방향을 정하듯, 장국영이 살아있다 혹은 장국영이 죽었다고 믿는 이들은 그 믿음에 의해 자신의 삶의 실천적 귀결을 결정한다. 세계가 신이 창조한 보석세공이라는 믿음과 세계가 다만 수많은 원자들의 집적체라는 믿음이 완전히 서로 다른 삶에 대한 실천적 귀결을 낳듯, 장국영이 살아있다는 믿음과 장국영이 죽었다는 믿음은 완전히 다른 삶에 대한 실천적 의미부여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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