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과 문화

갈릴레이의 망원경

김남시 2004. 2. 3. 20:56
부르멘베르크가 갈릴레이의 저작 서문에 쓴 망원경에 대한 글을 읽다. (Galileo Galilei, Sidereus Nuncius : Nachricht von neuen Sternen, Shurkamp 2002)

그에 의하면 망원경은 다만 그를통해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 우주론을 증거할 천체들을 발견하고 관측할수 있었다는 점에서 뿐 아니라, 망원경을 통한 세계의 관찰과 지각이라는 새로운 사태를 통해 이전까지의 중세적, 신학적 세계관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망원경을 통해 지금까지 인간의 지각을 통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천체와 별들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이제 사람들은 이 세계가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들 만으로 이루어진, 인간을 위한 세계가 아님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과 그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세계라는 신학적 세계관 속에서 세계는 아담이 그 모든 사물과 동물들에 이름을 붙여준 인간에게 친숙한 존재들로 이루어져 있어야 했다. 세계는 인간에게 스스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는,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선 별다른 애씀과 수고가 필요없는 친숙한 대상들로 이루어져있어야 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은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이데아 세계 속에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다 알고있었으며, 그를통해 이 세계에서 얻게되는 지식이란 다만 잠시 잊었던 것들을 상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상기를 위해선 그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든 사물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이제 망원경을 통해 인간은, 이 세계엔 우리의 눈으로 볼 수없는 수많은 존재들이 우리가 망원경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기 전까지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채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세계엔 우리가 그 존재조차 알지못하는 무수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로 가득차 있으며, 우리가 망원경을 통해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우린 그 존재여부조차 알지 못하고 죽어갔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낯선 사물들로 가득찬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이미 우리가 알고있는, 우리에게 친숙한, 인간의 선조가 그 사물들에 이름을 붙여주었던 가까운 세계가 아니게 되었고, 이는 동시에 이처럼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고 알기 위해 망원경, 현미경, 돋보기, 나아가 온갖 실험들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견’해내고, 탐색해내는 노력을 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연과 세계에 대한 태도는 순수이성 비판 서문에서 칸트가 자연을, 그로부터 자연의 진실을 취조해 밝혀내어야 하는 피고로 그리고 있는 데에서 절정에 달한다. 과학은 더 이상 신이 인간을 위해 세계라는 책 속에 친절히 적어놓은 진리를 보고 받아들이는 수동적 독서가 아니라, 자연을 확대하고, 해부하고,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의 진리를 도출해내어야 하는 법관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새로운 천체를 지각하기를 거부하는 동시대 인들을 마치 오디세이가 사이렌의 노래소리에 귀를 막듯, 진리의 빛에 눈을 가리고 거부하는 이들이라고 말함으로써 이제 빛으로써의 진리가 갖던 강제적 성격을 선택적 인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곧, 진리는 이제 더이상 그 스스로 그 누구도 부인할수 없게 우리의 눈을 밝히게 하는 강한 빛이 아니라, 그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부인할 수도 있는, 그런 선택의 대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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