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의 미학

흥부에게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에서 자라난 박에선 ‚돈’이 아닌 쌀과 옷, 집과 먹을 것들, 그리고 흥부 집안의 일손을 덜어줄 하인과 인부들이 나왔다. 돈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제화와 용역과 교환할 수 있는 전능한 교환수단으로 자리 잡은 이후,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세계의 물질적 존속과 교통의 원리로 기능하게 된 이후 흥부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면, 그 박들에선 현금이나 유가증권, 유망종목의 주식과 백지수표 들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로써 흥부와 그의 가족은 충분히 자신의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느끼고 행복해 했을 것이다.

 

16세기의 누군가가 정원이 딸린 집과 아름답게 장식된 침실을 소원했었다면, 21세기의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구입할 수 있는 ‚돈’을 원한다. 존재하는 모든 물건과 재화와 사태들로 향해있던 이전시대의 모든 다채로운 소망과 소원들은 이제 그 모든 것들과 교환될수 있는, 그럼으로써 저 수많은 선택의 가능성까지 덤으로 안겨다주는, 돈에로 향한다. 돈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완전한 교환가능성에 비례해, 돈을 원하는 우리의 소망은 더 다채로와진다.

 

매주 로또를 구입하는 샐러리맨은 최소한 자신이 선택한 번호가 꽝으로 판명될때까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소원할 수 있는 꿈꾸는 시간을 갖는다. 그는 로또의 당첨금이 자신에게 약속하는 만큼의 세상을, 세상의 모든 것들을 ‚구입하여 자신의 소유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당첨금의 액수가 크면 클수록 그를통해 그가 교환할 수 있는 세계의 폭과 넓이는 더욱 커진다. 돈의 액수는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세상의 크기와 맞먹는 것이다. 커다란 집과 옷과 먹을 것을 얻은 흥부가 그를통해 다만 세상의 지극히 일부만을 얻을 수 있었음에 비해 몇백억의 로또 당첨금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세상을 얻을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돈은 그야말로 ‚모든 가능성의 가치를 체현하고 있다.

세상의 가능한 모든 것들과 교환될 수 있는 돈의 이러한 가능한 잠재성에 우리가 원하는 행복의 주관성이 상응한다. 특정한 하나의 물건보다 상품권이, 나아가 특정한 종류의 물건과만 교환되는 상품권보다 돈이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와 선택의 가능성을 준다는 사실은, 우리 각자가 꿈꾸고 있는 행복과 행운의 표상이 모두의 주관성에 따라 서로 다양하다고 하는 사실과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준 선물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돈으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것과 교환할 수 있다!

인간의 기술과 의술이 발전할수록, 인류(?)가 지배할 수 있는 자연과 세계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어 갈수록, 인간이 현실적으로 원할수 있는 세계의 영역과 가능성과 범위가 점점 더 커져갈수록, 저 순수한 가능성으로서의 돈의 잠재력은 비례하여 점점 더 커져간다. 이제 충분한 돈만 있다면, 우주선에 동승해 달을 여행하는 것도, 자신의 탯줄을 냉동시켜 미래의 병에 대비할수도,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시켜 자신의 복제판을 만들어 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인류의 미래가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적 작동방식을 계속 유지해간다면 보다 많은 돈의 소유는 세계의 모든 가능성에 대한 보다 많은 지배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존재하는 듯이 사유할 수 있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능력을 ‚돈’은 증거하고 있다. 아직 내 것이 아닌 것, 그러나 이 돈을 통해 내가 나의 소유로 만들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꿈꿀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그를통해 순수한 가능성으로서의 돈의 ‚가상성’을 극대화시킨다. 우리 인간만이 우리가 아직 가지지 못한 (아직 당첨되지 못한 ) 돈에 대해 생각하고, 나아가 그 돈이 내게 가져다 줄 가능성에 대해 설레이며 꿈꿀 수도 있다! 로또는 이런 점에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이중적으로 발휘하게 한다. 로또를 구입해 당첨자 발표가 날때까지 우리는, 이 로또가 당첨되어 내 손에 떨어질 돈에 대해서,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내가 향유할 수 있을 가능한 세계에 대해 꿈꾸며 시간을 보낸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꿈꾸는 자 행복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