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이빨빠진 아이 2005.3.13

김남시 2005. 10. 30. 05:04
가은이의 이빨이 어제 빠졌다.

녀석은 그렇게 빠진 이빨과 이빨이 빠져서 생긴 구멍을 보면서 하루종일 즐거워했다. 녀석의 그 즐거움은 저 빠진 이빨이 녀석에겐 성장과 새로움의 표식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이다. 녀석은 이제 그만큼 자신이 육체적으로 성장했으며, 이제 빠진 그 자리엔 더 튼튼한 새 이빨이 돋아날 것이라는 걸, 저 흔들거리다 빠진 유치를 보면서 기대한다. 그리하여 녀석에겐 빠진 이빨이라는 육체의 한 부분의 상실은 흔들거리며 자신을 불안하게 했던 그 낡은 육체의 부분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사실상 성장과 갱신의 의미에 다름아니다.  

녀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저 진귀한 체험, 자신의 육체에서, 지금껏 자신의 육체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 어느날 스스로 그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체험은 그리하여, 오히려 미래와 자신의 성장에 대한 기대, 그리고 새로이 돋아날 새 ‚육체’에 대한  희망으로 채워져있다.

작년에 나는 근 몇십년동안 날 괴롭히던 썩은 어금니를 뽑아버리고 그 사이를 아말감으로 채운 프라스틱 이빨로 본드를 붙여 때워 넣었다. 그때 그렇게 빠진 썩은 이빨을 난 버리지 못하고 한동안 세면대 위에 보관해두었다. 내게 그 이빨은 내 육체의 일회성을 상기시켜 주는 경고장 같았다. 그렇게 빠진 자리엔 이제 더이상 새로운 이빨이 생겨나지 않는다. 나의 빠져가는 머리카락과 약해져 가는 시력들과 더불어 그건 내 육체가 이제 갱신과 성장이 아니라 몰락과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해주는 지표들이었다.  

빠진 유치를 베게밑에 놓고 자면 이빨 요정이 밤사이 가지고 간다고 믿고 있던 아이는 그러나, 그 이빨을 한참 가지고 놀다 그만 침대 밑으로 떨어뜨려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녀석은 마치 부모를 잃기라도 한듯 엉엉 울어댔다. 한참 울다가 마음을 정리한 아이가 내게 와서 말했다. ‚다른 이빨이 또 빠지면 베게밑에 넣고 잘거야’. 세면대 위에 놓아두었던 내 썩은 어금니가 생각났다.  그걸 화장실 변기에 던져 버리면서 난 다시는 그렇게 이빨이 빠지지 않기를 바랬었다. 아이와는 달리 나는 이미 저 한번뿐인 육체의 기회를 이미 써 먹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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