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거울보는 아이 2005.2.8

김남시 2005. 10. 30. 05:03
아이가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은 아이에게 최초의 저 ‚상상적 자아’의 모습을 제공해주었던, 아이에겐 ‚자기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창문’과 같다. 라깡에 의하면 아이는 저 거울을 통해 비록 상상적이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을 자기가 모두 규제할 수 있는 신체들을 지닌 하나의 통일체로 파악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생겨나는 자신 신체에 대한 이러한 상상적 그림은 아이가 자신의 실지로 신체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나가기 전에 아이의 자신의 신체에 대한 태도를 규정하고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저 거울을 통해 얻어진 ‚상상적인 자아상’에 근거해 상징적 질서의 세계로 진입하며 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아에 대한 ‚자기 이해’를 형성해나간다.

이제 다섯살인 아이는 이미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유치원에서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자신에 대한 ‚사회적 자아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전에 거울을 통해 획득되었을 자신에 대한 상상적 자아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자신처럼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지지 않은 다른 독일 아이들과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다름’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그러한 신체적 다름을 거울을 볼 때마다 새로이 상기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가은이에게 이제 거울은 자기 자신의 다름을 확인시켜 주는, 그리고 그를통해 그 다름을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으로 전환시켜주는 자아형성의 여과장치다.

하지만 아이에게 저 ‚다름’은 이미 녀석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른 독일 아이들과의 관계라고 하는 상징적 질서 속에서 이미 ‚언어적이고 사회적’으로도 감지되었을 터였다. 다른 독일 아이들은 자신들과 머리 색깔, 눈동자 색깔, 눈과 코의 모양이 다른 가은이에게 이미 저 다름의 상징적 시그널을 내비쳤을 것이고, 그 속에선 저 ‚신체적 다름’이 소위 사회적이고 문화적으로 구성된 ‚다름’이라는 상징적 의미망들과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을 터였다. (그리고 독일인들에겐 저 신체적 ‚다름’을 우등함과 열등함이라는 가치평가 체계 속에서 받아들였었던, 그를통해 수많은 ‚열등한 타자들’을 제거하려고 했었던 저 악명높은 상징적 질서의 경험이 있다!)

아이는 거울을 보면서 저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감지된 자신의 ‚다름’을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확인’ 할 것이다. 아이가, 거울을 통해 확인되는 자신의 ‚다름’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우열함의 가치평가로 환원시키려는 이곳의 상징적 질서 속에서의 ‚다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자의식과 자신감을 위축시킬지, 아니면 그 속에서도 꾿꾿하게 거울을 통해 확인되는 자신의 ‚다름’을 건강한 자기 정체성으로써 키워나갈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앞으로 아이가 경험하게 될 이 곳에서의 삶에 달려있을 것이다.

녀석의 친구들, 알리나, 막스, 알리시아, 마리, 쥘, 아일린의 부모들과도 다른 머리, 눈동자, 피부 색깔을 지닌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내 스스로가 나의 ‚다름’을, 저 뿌리깊은 상징적 질서의 위계 속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그리하여 저 육체적 ‚다름’을, 이 세계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든 „차이“들로 보편화시켜 내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이곳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곳의 상징적 질서가 무의식적으로 날 ‚호출’하는 저 ‚열등한 다름’이라는 관계 속에서 나를 드러내고,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전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저 상징적 질서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는 저 쉽지않은 과제를 수행해야만 한다. 내가 그에 성공했는지의 여부는 이후 저 아이의 삶의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난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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