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dergarten

아이와 상징계 2004.9.1

김남시 2005. 10. 30. 05:02
라깡에 의하면 인간은 이미 태어난 후 부터 두 개의 주체로 분열되어 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아이가 그를통해 상상 속에서 구성해 내는 상상적 자아 (moi)와 그를 자신이라고 믿는 자아 (je)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자아는 우리가 원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로 통일되어 있기는 커녕 서로 비껴나고, 충돌하며 대립하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온전하게 통일되어 있는 육체(moi)를 자기 자신이라고 믿는 아이(je)는 그러나, 자신의 육체가 자신의 의지대로 따라주거나 움직여주지 않을때 저 두 분열된 자아의 최초의 충돌과 갈등을 경험한다.

우노는 이제 제법 획득한 자신의 육체적 능력에 기반해, 건방지게도, 이제 자기 육체를 자신이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모든 걸 자기 혼자 해 낼 수 있다는 상상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 엄마, 아빠가 입혀주겠다는 것을 기를쓰고 반항하곤 혼자서 바지를, 잠바를 입으려고 낑낑거리거나, 누나가 하듯 자기도 흘리지않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음식을 떠 먹으려고 하거나, 누나가 타는 자전거를 자기도 탈 수 있다는 듯 올라 타려 고집할 때 녀석의 저 상상적 자아 (moi)는 녀석의 실제적 자아 (je)와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녀석의 ‚진짜 자아’는 어쩌면 그 어딘가 사이에 존재할 것이다.  

소매에 팔을 집어넣는 대신 잠바를 팔에 걸치고는 자랑스럽게 튀어들어오면서, 누나가 부르는 식사 전 노래를 웅얼거리며 따라하면서 우노는, 라깡이 말했던 것처럼, 현실 속에서 실지로 충족되지 못한 자신의 요구를 충족되지 못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그 요구가 충족되었다는 가상적 상상을 통해 자신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현실 속에서 언제나 충족될 수는 없는 자신의 요구를 가상적이고 상징적으로 충족시키는 법을 배움으로써 녀석이 점점 상징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자신이 원하던 것이 충족되지 못하거나 엄마, 아빠 혹은 누나에 의해 제지당할 때 소리를 지르며 항거하는 우노는 그러나, 아직 현실 속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요구를 가상적이고 상징적으로 충족시키는 방식에 여전히 서투르기만 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만 실재적으로 충족시키는 방법 밖에는 잘 알지 못하는 탓이다. 실재를 가상적이고 상징적으로 대체해 주는 언어를 배움으로써 녀석은 이제 상징계 속에서 그곳의 규칙에 따라 자신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Kindergart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울보는 아이 2005.2.8  (0) 2005.10.30
거짓말 하는 아이 2004.12.13  (0) 2005.10.30
아이의 욕구와 말 2004. 8.2  (0) 2005.10.30
발레수업 2004.7.11  (0) 2005.10.30
아이와 육체 2004.5.26  (0) 2005.10.30